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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과정

1) 초기의 송도학원(1906~1917)

송도고등학교는 1906년 10월 3일 개성에 민족의 선각자인 좌옹 윤치호 선생에 의해 ‘한영서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하였음. 설립자 윤치호 선생은 이미 약관 17세에 일본에 건너가 동경 유학생의 한사람으로 영어를 배우며 개화사상을 수용하였고, 푸트 주한 미공사의 통역관으로 귀국해 벼슬길에 올랐으나 갑신정변에 연루되어 중국 상해로 건너가 미국 남감리교 계통의 학교에 다니는 동안 기독교로 개종해 세례를 받았다.
미국 밴더빌트(Venderbilt) 대학과 에모리(Emory) 대학 등의 명문 대학에 유학해 현대문화를 두루 섭렵한 당대 최고의 지식과 덕망을 갖춘 선각자였다.

미국에서 귀국한 윤치호 선생은 독립협회 회장과 독립신문 발행인 으로 활동하면서 기독교 복음 전파와 후세교육을 사명으로 여겨 개성에 오늘의 송도고등학교 전신인 ‘한영서원’을 설립해 초대 교장에 취임하였다.
교명 ‘한영(韓英)’의 유래는 대한(大韓)의 한과 영재(英材)의 영을 조합해 만들어진 명칭이며, 서원은 한문교육 시대에 교육을 담당하던 기관의 통칭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구속되면서 미국인 초기 선교사들이 20여년간 교장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최초의 한영서원 학생들

2) 개성의 송도학원(1917~1951)

한영서원은 1917년 3월 20일, 조선교육령에 의해 4년제 고등보통학교로 학칙변경 인가를 받아 교명을 ‘사립 송도고등보통학교로 개명 함. 이와 때를 같이해 1922년부터 1925년까지 설립자 윤치호 선생이 학교장 직을 다시 맡게 됨. 당시의 송도 캠퍼스는, 현재의 상황에서도 고급의 시설을 지니고 있었고 해방 이후 38선 이남이었던 개성까지가 대한민국의 경계 였기에 송도고등학교는 개성 부지에서 유지되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 면서 학교가 인천으로 옮겨오게 됨.

송도고보시절의 학생과 교사

3) 인천의 송도학원(1951~1982)

1952년 4월 5일, 인천시 송림동에 피난 개교 후 1953년에 현재의 송도중학교가 있는 답동 캠퍼스에 재 개교 하여 수십 년 동안 중·고등학교를 같은 건물에서 운영하게 됨. 그러나 1970년 3월 1일부터 시행된 중ㆍ고 분리 원칙에 따라 1979년 3월 20일 중·고등학교가 분리운영하게 됨.

중고등학교가함께 사용하던 답동 교사

4) 중흥의 송도학원(1982~ )

1980년 7월 22일 현재의 옥련동 부지에 고등학교 신축 교사 기공식을 하게 되었으나 재정적 어려움으로 공사가 중단될 상황에서 개성 출신의 기업가였던 동양화학공업주식회사의 이회림 회장이 송도고등학교 신축을 위한 거액의 기부금을 출연함에 따라 공사가 마무리 되고 1983년 신학기 중학교와 완전 분리되어 현재의 위치에 이전하게 됨.
송암 이회림 회장은 송도고등학가 개교한 곳, 개성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기업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이후 1982년 송도학원 제4대 이사장에 취임한 이회림 이사장은 취임 후 체육관과 과학관을 신축하는 등 개교 100년에 즈음한 송도고등학교 중흥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그가 남긴 교육철학은 전문적 지식인을 길러내기에 앞서 덕(德)과 체(體)를 겸비한 인간을 육성해야 함을 강조해 ‘먼저 사람이 되라’는 송도고등학교 교시(校是)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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