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2018송도수학
P. 12

12                                                                                              SONGDO HIGH SCHOOL




                                                 우리나라 수학의 역사






                 누구나 수학 공부를 하면서 한번쯤은 궁금해 보았을 수학의 역사, 그 수                     고려 시대에는 통일 신라 시대의 제도를
               학의 역사를  취재해 보았다.                                            거의 그대로 답습하였으며, 궁정과학의 수준을
                 세계 어느 지역에서든 문화가 형성되면, 수학이 발전하기 마련이다. 5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세종은 수학의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독자적으로 수학이 형성되고 발전해                      진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세종은 집현전 교리들에게 수학을 배우

               왔다. 열, 스물, 서른과 같은 수의 이름은 십, 이십, 삼십과 같은 중국의 이름               게 했고 자신도 정인지에게서 ‘산학계몽’이란 책에 대해 강의를 받기도 하
               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져 왔다는 사실에서도 우리나라 수학의 독자성을                      였다. 세종대왕의 이러한 열의로 인해 당시 수학이 많이 진흥되었다. 이처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동쪽에 위치하여 비교적 안정되고 크고 넓은                   럼 지도자의 수학에 대한 관심이 그 나라의 수학 수준을 향상시키고 동시
               것에 대한 필요성이 중국보다 더 적기 때문에, 정교하고 수준 높은 수학에                    에 국가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종 이후 우리나라 수학은 수

               대한 필요성이 적었을 것이고, 중국의 수준 높은 수학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학사에서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송나라, 원나라 시대의 수학을 흡수하
               독자적인 수학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 역시 사실이다. 특히 일제의                    여 발전시키면서 독자적인 수학 역시 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식민지 시대, 민족혼의 말살 정책과 서양 수학으로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우                   이라는 비극으로 인해서 중요한 수학 교과서들이 불타고 약탈당해 수학
               리나라 정통 수학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                   분야에서도 많은 손실을 입었다.

               하고 우리나라 수학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는 일은 수학을 배우고 있는 학생
               으로서 한 번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 이후 조선의 수학자 경선징(1616~?)의 ‘구수략’, 홍정하(1684~?)
                                                                           의 ‘구일집’, 황윤석(1719~1791)의 ‘산학입문’, 홍대용(1713~1783)의
                                                                           ‘주해수용’ 등 중요한 수학책들이 저술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동양

                                                                           수학은 서양 수학과 다른 형이상학적인 전통에서 출발하였으며, 관료조직
                                                                           속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서양 수학이 들어오면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특히, 갑오경장 이후 실시되기 시작한 새로운
                                                                           학교교육 체제하에서 전통적인 산술은 영영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리고 말

                                                                           았다.


                                                                             이제 우리나라 수학계는 서양 수학을 받아들이고 이를 발전시키고 있
                                                                           다. 우리가 우리의 전통에만 매달려 잠시 개방을 소홀히 하고 좁은 땅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떠들어 대는 동안 많은 분야에서 그리고 수학의 분야
                                                                           에서도 세계에서 뒤쳐졌었다. 그래서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필즈상을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몇 명의 수학자가 수상되었고 중국의 수학자도 수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에서는, 신라시대(서                     상한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수학자는 아직 필즈상을 받지 못하였다. 그렇

               기 682년)에 수학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고                   지만 우리 민족은 저력이 있고 창의력이 있는 민족이기 때문에, 조만간 우
               구려와 백제, 신라에서 이미 수학이 발달하였다. 수학은 독자적인 과목으                     리나라 수학이 세계 수학계에 우뚝 설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우리 송도고
               로 발전하기보다는 성을 쌓고 일식과 월식을 예언하는 등과 관련하여 발                      학생들은 더욱 더 수학 공부에 힘내주길 바란다.
               달하였다. 예를 들어보면, 당시 성을 쌓는 기술자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비례식을 안다면 여러분들도 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다.                                                             (1학년 이석주 기자)
                 Q) 일만 입방척의 땅을 파는데, 굳은 흙과 굳지 않은 흙의 부피는 각각
               얼마일까? 단, 판 땅과 거기에서 나온 굳은 흙과 굳지 않은 흙의 부피의
               비는 4:3:5이다.
   7   8   9   10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