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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두 분의 첫 만남이 꽤 화제였습니다. 민노총 위원장에서 물러나고도 이수영 회장과 개인적
INTERVIEW 제가 민노총 위원장을 맡았을 때 회장님도 경총 회장으로 친분을 이어나갔다고 들었습니다.
취임하셨어요. 그분이 경총 회장으로 취임한 직후 첫 만남이 그분과의 인연이 참 재미있어요. 제가 이라크 파병
이수호 있었죠. 경총과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문제로 단식 농성을 할 때 이분이 술 한잔 드시고 혼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일이라며 민노총 내부에서도 반대가 극심하던 때였어요. 농성장으로 찾아오셨어요. “여기 왜 오셨습니까” 하니까
사용자 측은 싸워서 물리쳐야 한다는 적대적 의식이 “파병이 노동자와 무슨 상관이냐. 오지랖도 아니고 당신이
강한 시절이었죠. 이런 와중에 경총의 수장이 민노총을 정치인도 아닌데…”라고 하시더라고요. 당신 원칙에는
방문한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요.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이 맞지 않다고 판단하신 거죠.
그때 그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대기업 총수이면서 경총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2004년 노사정대표자회의에 회장이면 재계 전체의 대표자인데, 권위 의식도 없고 무척
민노총이 참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상황이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는 분이었어요.
어땠나요?
회장님도 대화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고, 저 역시 두 분 사이에 잊지 못할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소개해주세요.
생각했어요. 민노총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제가 포천에 잠깐 머물 때, 동네 유황천에 간 적이 있어요.
노사정위원회에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이때 거기서 이수영 회장님을 만났는데, 둘 다 엄청 놀랐죠.
노동자들이 엄청나게 해고당하고 고생이 많았거든요. 대충 씻고 나가서 막걸리 한잔 걸친 기억이 나네요. 그때
노사정위원회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상황에서 회장님은 제가 기회는 이때다 싶어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새로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이후 행사에 기부를 부탁드렸어요. 그러자 “얼마면 되는데?”
김대환 노동부 장관과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용득 하시더니 “내가 쓸 수 있는 개인 한도가 천만 원이야”라고
한노총 위원장, 이수영 경총 회장, 민노총, 저 이렇게 모여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이후로 ‘본인 한도’라는 천만 원을
대화 채널을 가동했죠. 자주 보내주시곤 했어요. 제가 시집을 냈을 때도, 전태일
재단을 운영하면서도 그분의 개인 한도 혜택을 많이
경총 회장으로서 이수영 회장은 어떤 분이었나요? 누렸죠. 보통은 각자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걸로 끝인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할 때도 분위기가 과열되면 중간에서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그런데 그분과는 끝까지 관계가
중재를 많이 하셨죠. 자신만의 원칙이 분명한 분이고 대화와 유지됐어요.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을 중요시한 분입니다.
민노총과 경총은 카운터파트너라는 위치적 성격이 인간 이수영은 어떤 분이었다고 생각하나요?
한국 노동 운동계의 중심 인물인 이수호 전 있잖아요. 그분은 언제나 도발적인 질문을 하고 상대방이 보통 분이 아니었죠. 개인 카드를 사용하는 건 당연한
민노총 위원장. 그는 경총 회장이던 이수영
어떻게 응대하는지를 지켜보는, 긴장감 있는 토론을 일이었고요. 항상 회삿돈은 내 돈이 아니라며 “난
회장과 각자 ‘노사 관계’를 대표하는 자리에서
즐기셨어요. 참 재미있었죠. 자기 관점이 분명해 날카로운 돈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런데도 그분께 참 많이
만나 오랜 세월 교류를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질문을 던지고, 논리에 맞지 않는 말에는 적극 반박하셨죠. 얻어먹었습니다. 정확하고 논리적이며 따뜻한 인간미를
그의 기억 속 이수영 회장은 확고한 신념과
인간미를 모두 갖춘,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남의 의견도 귀담아들었는데, 그 점이 다른 분들과 큰 갖춘 품격 있는 신사였죠.
품격 있는 신사였다. 차이점이죠. 공부를 제대로 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4년 3월 9일 자 <동아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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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4. EXPLORING NEW HORIZ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