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117년 전통 선후배 내리사랑 ‘주목’
인천 송도고는 평준화 일반고임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진학 실적을 거두며 특목자사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문고다. 다채로운 교육 과정으로 ‘수시 강자’의 면모를 이어오던 송도고는 지난해 수능 최상위권의 각축장으로 여겨지는 KAIST 정시 전형에서 특목고와 자사고를 제치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등록자를 배출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워낙 모집 인원이 적어 바늘구멍이라 불리는 KAIST 정시 전형에 합격하기 위해선 수능 성적이 의대에서도 상위권 의대에 필적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시뿐 아니라 정시에서도 막강한 저력을 입증한 셈이다.
물론 송도고의 수시 체제야 여전히 명성이 자자하다. 특히 이공계열을 겨냥한 수시 시스템에 있어서는 평준화 일반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부분의 인원을 수시로 선발하는 KAIST 포스텍 지스트 DGIST UNIST 등 이공계특성화대의 등록 실적을 따져보면 송도고는 전국 일반고 중에서 매년 상위에 랭크된다. 가장 최근인 2023대입만 해도 총 8명으로 일반고 톱5에 들었으며, 전국의 영재학교와 과고 자사고 등을 모두 포함해도 40위 안에 든다. 과학 동아리와 연구 프로그램, 융합 교육 과정 등 체계적인 과학 중점 교육 체제는 물론 교사들의 적극적인 지도까지 빈틈없는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물이다. 오랜 기간 과학 중점 운영 성과 최우수교로 선정, 벤치마킹을 위해 전국에서 송도고로 모여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117년의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끈끈한 선후배 문화 역시 송도고의 강점이다. 의학계 이공계 정치계 스포츠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굵직한 뿌리를 내린 송도고 출신들은 동문으로 뭉쳐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동문회 차원에서 후배들의 지역 학술 대회 참가를 위해 참가비를 전액 후원하거나, 서울대나 의대 등 최상위 대학에 진학한 졸업생들이 학교로 다시 찾아 진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내리사랑 문화가 송도고에 정착되어 있다. 전국 공모로 2020년 3월에 부임한 이상원 교장은 “송도고는 학교법인 송도학원(이복영 이사장) 송암장학회 송도중고등학교총동창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 환경과 프로그램을 제공할 기틀이 마련돼 있다. 이런 지원을 통해 마련한 분야별 다채로운 학습 활동들은 여느 일반계고와는 차별화한 학교 분위기를 만들었고, 교사들의 열정이 더해져 인천을 넘어 전국 최고의 교육 프로그램을 자부하는 학교로 발전해 왔다”고 말했다.
수많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혹여 그로 인해 학생들이 지치진 않을까 하는 시선은 노파심에 불과하다. 80분의 점심 시간, 중간고사 이후 4~5일간의 ‘쉼’을 제공하는 송도고의 지향점은 ‘여백 있는 학교’다. 달릴 때와 쉴 때를 구분하면서 개인의 능력과 학력의 조화로운 균형을 찾아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송도고의 교육 철학이다.
<수시/정시 양날개로 비상.. ‘전국구’ 이공계 진학 실적>
송도고는 매년 특목자사에 견주는 대입 성과를 내고 있는 일반고다. 선발 효과가 아예 없는 평준화 고교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인 2023대입만 해도 서울대 6명, 연세대 14명, 고려대 9명, 치대/한의대/간호대/약대 등 의약계열 15명 등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2022대입 역시 서울대 5명, 연대 12명, 고대 15명 등의 합격 실적이 이어졌다. 정평이 난 과학 중점 교육 과정의 효과로 특히 이공특으로의 진학 실적이 돋보인다. 중복을 제외하고 실질적인 등록자만 산출해 봐도 KAIST 2명, 포스텍 1명, DGIST 2명, UNIST 3명 등 8명이다. 전국 일반고 중 다섯 번째로 많은 규모다. 2022대입에서도 KAIST 2명, UNIST 5명 등 총 7명으로 전국구 실적을 기록했다.
매년 괄목할 만한 대입 성과를 내는 배경에는 다양한 중점 과정으로 무장한 교육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2011년 과학을 시작으로 사회 IT융합 체육 국제 의학 군사경찰까지 학교마다 1개 과정을 운영하기도 힘든 중점 과정을 송도고는 끝없이 확대해 왔다. 2022 개정 교육 과정에서 강조하는 학생의 자율성과 선택권이 이미 송도고에서는 보장돼 온 셈이다.
물론 다양한 교육 과정이 입시 성과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비결로는 교사진의 열정과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교사들은 교과별 심화 수업 및 과제 설계를 통해 다양한 학습 경험을 제공하고, 통합형 사고 역량을 강화해 학생의 교과별 특성과 공동체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는 데 몰두하고 있다. 더 나아가 활동을 통해 드러난 학생의 개별 능력을 학생부 각 영역에 세세하게 기록하면서 완성도 있는 학생부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수업 및 활동의 과정, 평가 그리고 기록을 일체화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이충록 교감은 “각자 맡은 학교 프로그램에 대한 교사들의 자부심과 열정이 뚜렷하고, 각 프로그램에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고 자부했다. 최근 발표된 2028대입 개편안에 따라 수능과 내신이 모두 쉬워지면서 학생부 정성 평가의 중요성이 확대된 상황. 송도고의 막강한 수시 시스템은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 중점 학교’ 롤 모델.. 과학 동아리, 해외 의료 봉사 등 ‘활발’>
송도고는 과학 중점 학교의 롤 모델로 꼽히는 고교다. 2011학년부터 교육부 지정 과학 중점 교육 과정을 도입, 2016학년부터 2021학년까지는 매해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과학 중점 학교 운영 성과 최우수교’로 선정되면서 전국 고교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송도고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걸맞게 창의 융합적 과학 인재 양성을 목표로 체계적인 교과 수업과 분야별 동아리 활동, 학생 중심의 특화 연구, 융합 STEAM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창의성이 높은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매 학기 학생과 교사가 함께 기존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한다.
대표적으로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돼 있다. 특색 있는 동아리가 다수 만들어져 재능과 관심 분야의 지식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 동아리는 바로 SCV(과학봉사동아리)다. ‘섬김의 리더(SERVANT LEADER)’를 키우는 동아리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송도고 졸업생 장기려 박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려 인하대 세브란스 서울대 병원의 환아와 함께하는 과학 봉사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장기려 박사는 평생을 병원 옥탑방에서 살며 인술을 실천했던 청빈한 의사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일평생을 헌신한 대표적인 송도고 동문이다. 이러한 뜻을 이어받고자 학생들은 학업으로 바쁜 시간을 할애해 SCV 동아리를 통해 여러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SCV 동아리 부원이었던 손경호 학생(서울대 의대 재학 중)은 “불확실했던 의대라는 꿈을 명확히 잡아주는 계기가 됐던 활동”이었다고 말했다.
자사고 특목고와 견주어도 특색 있는 차별화한 활동은 바로 해외 의료 봉사 프로그램이다. 2019년에는 슈바이처의 봉사 장소였던 아프리카 가봉의 의료원에 방문해 과학 체험 봉사 활동과 의료 봉사 활동을 진행했고, 2023년 7월에는 블루크로스 단체와 함께 라오스 해외 의료 봉사 활동을 실시했다. 의학의 꿈을 키우는 학생들이 단순한 학습으로 진로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교훈인 ‘봉사’ 정신을 함양해 전인적인 의료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송도법인과 송암장학회는 많은 학생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과학 중점 교육 과정과 함께 IT 융합 중점 과정도 2020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단순한 컴퓨터 활용을 넘어 정보 문화 소양과 컴퓨팅 사고력을 겸비한 창의적 IT 인재 양성을 목표로 C언어, JAVA, 아두이노를 활용한 사물 인터넷, 웹 페이지 제작 등 체험 중심의 교육으로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학교 정규 교육 과정으로는 정보, 프로그래밍, 인공지능 기초, 인공지능과 피지컬 컴퓨팅, 자료 구조를 배우며 일반고에서는 펼치기 힘든 교육 과정을 학생의 선택에 따라 전 학년에 배치해 기초와 깊이 있는 학습을 제공하고 있다.
무학년제로 운영하는 방과후 학교와 특강은 학생들의 능력과 관심에 따라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진행된 프로그램만 해도 C언어와 아두이노로 만드는 미니 게임기, C#의 기본과 유니티를 활용한 게임 제작, C++프로그래밍을 활용한 인공지능 게임 제작, 인공지능과 컴퓨터 비전, 인공지능을 활용한 웹페이지 제작, 파이토치를 활용한 딥러닝 모델 활용, 라인 트레이서를 통한 자율 주행차의 이해, 파이썬과 유니티를 활용한 AI STEAM 융합 특강, 인공지능을 활용한 핸드폰 어플 만들기 등 깊이 있는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다. 송도고는 IT 융합 중점 과정에 대해 “오늘의 입시를 넘어 내일의 꿈을 준비하는 교육을 목표로 한다”면서 “학생들의 창의성과 잠재력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완성도 있는 ‘사회 중점 과정’ 구축.. 융합 인재 양성 박차>
송도고는 과학뿐 아니라 사회 중점 과정 역시 완성도를 갖췄다. 최근 융합 인재를 강조하는 대입 트렌드를 고려하면, 최대 경쟁력으로 부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송도고는 학생들의 인문학적 능력 향상과 진로 탐색을 위해 공통 과정 수업에서 독서 발표 토론을 활용해 참여형 수업을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종합적 사고력과 논리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민주 시민 자질 함양을 위한 토론 대회는 매해 진행하고 있는데 ‘교내 대회가 지역 대회보다 어렵다’고 할 정도의 수준 높은 토론이 진행된다. 자연스럽게 외부 대회에서는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경제 정치 분야 외 법학 교육학 등 현직 대학교수와 변호사, 은행 관계자 등을 초청해 진로 특강도 실시하고 있다. 시의회, 국회, 증권 거래소, 통계청, 법원 등을 방문하는 현장 체험 활동과 모의 유엔, 국제 모의 재판, 경제, 모의 주식, 창업, 통계 등 다양한 진로 체험 활동과 동아리 활동도 자랑거리다.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세계 시민 교육도 매년 진행하고 있다. 11개국에 이르는 세계 여러 나라의 유학생들을 초청해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소개받고 글로벌 인재 육성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고 학교 측은 설명한다. 학생 중심의 활동으로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며 교실 내외에서 미래 인재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고 평가된다.
10년 이상 활동해 온 효봉사단도 송도고의 자랑거리다. 20여 명의 학생 학부모 교사가 독거 어르신에게 매달 방문하고 있고, 평화의 집(장애인 시설)에서 10여 명의 교사와 학생이 매달 목욕 봉사를 실시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사제동행 답사 활동으로는 다산 정약용 유적, 동구릉, 수원 화성, 동학 농민 운동 답사 등 매년 주제를 달리하여 진행하고 있고, 지난해엔 30여 명의 학생이 안동 임청각과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해 독립 운동사를 배우고 왔다. 올해는 40여 명의 학생과 교사가 경주 일대를 답사하면서 교과서에서 습득한 내용을 실제 현장에서 체험하며 학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변화하는 입시에 ‘발 빠른 대응’>
교과별 교육 과정과 체험 중심의 활동으로 수시에 강한 학교로 유명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정시 실적을 무시해선 안 된다. 지난해 서울대 등록자 중 수시와 정시 비율은 50대 50으로 동일했고, KAIST 등록자 2명은 전원 정시로 합격했다. 최근 상위 대학을 중심으로 정시 비중이 늘어나자 송도고가 발 빠르게 대응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수시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는 한편, 방과후 학교에서는 수준별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정시 대비에 열을 올리는 식이다. 학력 편차가 큰 일반고 특성상 학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가 쉽지 않지만, 송도고는 기초 학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부터 심화 단계까지 학년별로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필요와 부족함을 채워 주고 있다. 올해만 해도 기초 강좌부터 최신 수능 경향을 파악한 문제 풀이 등 여러 수준의 강좌가 1학년 28개, 2학년 28개, 3학년 38개 등 94개나 된다.
송도고만의 진학 진학 컨퍼런스인 ‘진로여지도’도 눈여겨볼 만하다. 진로여지도는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체계적인 진학 지도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담임 교사, 진학 담당 부장, 교과 지도 교사, 동아리 교사, 관련 학과를 진학한 졸업생 선배까지 합심해서 학생 한 명의 학생부를 분석하고 합격 가능성을 진단한다. 1학년 때 다양한 직업군의 강사와 대학생들을 초청해 학생 맞춤형 멘토링 진로 진학 컨설팅을 실시하고, 2학년 때 학생부를 토대로 입시 방향을 안내하는 개별 컨설팅을 실시한 후 3학년 때는 진로여지도의 대상이 된다. 학생의 강점과 학생부에 나타난 학생의 잠재능력을 발견해 입시뿐만이 아닌 대학 입학 이후의 학업까지 고려해 학과를 선택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학교 측은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