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1906년 개성에 작은 서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초가지붕 아래 14명이 모였습니다. 서원은 1917년 송도고등 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고, 1952년 전쟁을 피해 인천으로 이전했습니다. 지금의 송도고입니다.
농구부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송도고의 자랑입니다. 송도고 홈페이지는 ‘다른 학교 팀은 오직 시합에 이기기 위해서 선수의 장신화에만 중점을 두는 반면, 본교는 기초훈련에 역점을 두어 기본기를 다지는 연습을 중시하고 있다’고 농구부를 소개합니다.
기본에 충실한 농구로 유희형, 김동광, 이충희, 신기성, 김승현, 김선형, 전성현 등 많은 스타를 배출했습니다. 특히 좋은 가드를 많이 배출해 ‘가드사관학교’라는 별칭도 얻었습니다.
올해도 송도고에는 빅맨이 없습니다. 그런데 전력은 상위권으로 평가받습니다. 공을 다룰 줄 아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3학년에 진급하는 위건우(178,G), 방성원(185,G), 방성인(189,G), 이찬영(193,F)는 작년에도 주전급으로 뛰었던 선수입니다.
▲ 2024년을 기약하는 2023년
작년 시즌, 2학년이라는 주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출발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첫 대회인 춘계연맹전에서 5게임 평균 86.2득점의 막강한 공격력을 선보이며 8강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실점 역시 89.6점으로 많았습니다. 불안한 수비와 경기력의 기복이라는 약점을 드러냈습니다.
작년 추계연맹전도 그랬습니다. 예선에서 서울의 강자 배재고에 92-72, 명지고에 89-60으로 낙승을 거뒀습니다. 그런데 약체로 평가되던 여수화양고에게 패했습니다.
8강에서 휘문고를 88-65로 대파했지만, 준결승에서 홍대부고에게 97점을 내주며 아쉬움을 삼켰습니다. 전반은 45-43으로 앞섰습니다. 그런데 후반에 33-54로 무너졌습니다. 얇은 선수층으로 인한 피로 누적도 이유가 됐습니다.
2학년 네 선수는 8강전에서 팀의 88점 중 78점, 4강전에서 팀의 78점 중 73점을 합작했습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내년을 기약하기에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최호 송도고 코치가 “올해는 결승 진출도 가능하다”고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2학년 선수들의 수비 능력이 괜찮습니다. 이미 검증된 3학년 선수들과 조화를 이루면, 10년 전 춘계연맹전 우승의 영광도 재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3학년 선수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우승도 한 번은 해야지”라는 주장 방성인의 말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최강으로 손꼽히는 경복고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습니다.
위건우는 “우리가 이길 것 같다”고 했고, 이찬영 역시 “우리가 더 빠르고 개개인 능력이 좋아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방성원만 “경복도 좋은 팀”이라며 “경기는 해 봐야 안다”고 했습니다. 신중함일 뿐, 자신감이 없는 건 아닙니다.
▲ 우승을 위한 ‘팀 퍼스트’
위건우는 팀에서 장난을 가장 많이 치는 선수입니다. 방성원은 “그래도 밉상이 아니”라며 “팀 분위기를 띄우는 선수”라고 얘기합니다. “볼 컨트롤이 좋고 순발력이 장점인데 냉정함과 슈팅 능력은 과제"라고 덧붙입니다.
이찬영의 과제도 냉정함입니다. 방성인은 “좋은 신장에 내외곽 공격이 다 되는 선수라 상대 수비를 까다롭게 한다”며 다만 “경기가 안 풀릴 때 기분대로 플레이하는 경향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찬영, 위건우, 방성원 모두 기분파라 골치가 아프다”며 웃었습니다.
방성원은 방성인과 함께 개인 훈련량이 가장 많다고 얘기합니다. 이찬영은 방성원을 “장점인 슈팅 능력에 수비도 좋은 3&D 유형의 선수”라며 “수비와 리바운드 같은 궂은일도 조금 더 집중하면 좋겠다”는 당부도 남겼습니다.
방성인은 훈련량과 집중력 모두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위건우는 “슛, 드리블, 패스 모두 좋고 팀에서 제일 열심히 하는 선수”라며 “토킹(talking)을 많이 하고 리더쉽도 있는데 시합 중에 언성을 높이지 않았으면(웃음) 좋겠다”고 말합니다.
개성이 강하고, 장점과 과제가 뚜렷한 선수들입니다. 그래서 최 코치는 ‘팀 퍼스트(Team First)’를 강조합니다. 팀을 위한 조직적인 플레이가 펼쳐지면 성적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학생선수로서의 본분’도 강조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전규삼 할아버지의 가르침입니다. 고 전규삼 할아버지는 ‘인천 농구의 대부’이자 ‘현재의 송도 농구를 일으킨 평생 농구인’으로 불립니다.
나무위키는 전규삼 코치를 ‘대한민국 체육계에서 다시 나올 수 없는 명 지도자’로 소개합니다. 그의 코칭 철학은 탄탄한 기본기와 꾸준한 연습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강조했습니다. 학기 중에는 오전 훈련을 소집하지 않았습니다. 신기성 해설위원은 “할아버지는 농구를 못한다고 혼내지 않으세요. 그 대신 성적이 떨어지면 혼내셨어요”라고 기억했습니다.
▲ 농구를 제대로 하는 법, 다 같이 하는 농구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송도고의 팀 훈련은 오후 3시에 시작됩니다. 5시까지 훈련을 하면 식사 시간입니다. 7시부터 다시 시작된 훈련은 8시에서 8시 반에 마무리됩니다. 그 시간에 선수들은 기본기를 집중 연마합니다.
선수들도 전규삼 할아버지를 알고 있습니다. 방성인은 “(송도에서) 농구를 제대로 하는 법을 배운 느낌”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다 같이 농구 하는 것입니다. 이찬영 역시 “강압적이지 않고 조곤조곤 설명하는” 코칭이 좋다고 얘기합니다.
자율적인 분위기는 호불호가 있습니다. 학교나 일부 학부모는 보다 빠른 성장과 성적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직업선수를 꿈꾸는 선수들에겐 그것이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대학 진학에도 유리할 수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습니다.
새벽 훈련, 오전 훈련, 오후 훈련, 야간 훈련을 매일 반복하던 과거와 비교해 학생선수의 운동시간은 짧습니다. 그 시간을 밀도 있게 운영하는 것이 코치의 중요한 능력이 됐습니다. 그런데 코치 한 두 명으로 10명이 넘는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이 무리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구조적인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합니다.
코칭 스킬도 점검해야 합니다. 코칭은 원하는 목적지를 함께 가는 협력적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지식과 전문성 위에 경험을 더해야 합니다. 생각이 다르고 개성이 다른 선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도 코치의 중요한 자질입니다.
▲ 우승을 향해 달리는 네 개의 바퀴
경기를 뛰는 것은 선수입니다. 대회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을 관리하고 승부처에서 집중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부상은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코치는 그것을 관리해야 합니다. 선수는 서로를 의지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방성인은 “송도에서 제대로 된 농구를 배웠다”고 했고, 제대로 된 농구는 “다 같이 하는 농구”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전규삼 할아버지의 농구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송도고 농구의 특징은 탄탄한 기본기와 창의적인 플레이, 그리고 빠른 공수 전환입니다. 특히 드리블 없는 속공은 송도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사전에 준비된 약속이 있고, 약속에 따른 움직임이 없으면 불가능한 전술입니다.
같이 하는 농구는 내가 한 발 더 뛰는 농구입니다. 내가 돋보이는 플레이가 아니라 팀을 위한 플레이입니다. 어려운 과제입니다. 지난 20일, 동국대와 연습경기에서도 ‘기분파’의 기복이 보였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농구인은 “기본에 더 충실해야 한다. 기본은 수비, 리바운드, 달리기, 토킹 같은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3학년 네 명은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네 개의 바퀴입니다. 바퀴 중에 하나만 방향을 벗어나도 차는 목적지를 잃습니다. ‘모교의 영광’ 운운하는 것은 철 지난 유행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송도고에는 지키고 전해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