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박천식(朴天植) 전 서울고법 판사, 이재은(李在殷) 전 기독교방송 사장, 장명희(張明熙) 아시아빙상연맹 회장 등은 올해 56년 만에 고교 졸업장을 받는다. 1950년 개성 송도고등학교 3학년이던 이들은 졸업을 2개월 앞두고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남으로 피란 길에 나섰다.
학교는 2년 후 인천에서 다시 문을 열었지만 이들은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서기 위해 숨가쁘게 살아야 했다. 올 10월 개교 100년을 맞는 인천 송도고(교장 박상수)가 이 32회 동문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기로 한 것이다.
송도고는 개화파였던 윤치호(尹致昊) 선생이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인 1906년 미국 감리교회 후원으로 세운 '한영서원'이 전신이다. '새로 태어나는 민족이 돼야 한다'는 뜻에서 개교일을 개천절(10월 3일)에 맞췄다. 개성에서의 학창 시절을 묻자 장 회장은 추억으로 가슴이 뛰는 듯했다.
"개성 고려 왕궁터 있잖아요? 송악산 기슭 20만평 땅에 미국 대학 같은 석조 건물이 3개동, 2000명이 들어가는 강당에 실내체육관, 수영장까지 있었을 정도니까 상상해 보세요. 개성 출신이 3분의 1이고, 평안북도에서 전라남도까지 전국의 내로라하는 준재들이 모였지. 화가 오지호, 나비 박사 석주명 선생에게서 미술과 생물을 배웠지. 자부심이 대단했어요."
자존심 강한 개성 출신들은 전쟁이 수습된 1952년 인천 송학동에 판잣집 교사(校舍)로 재개교한 뒤 답동을 거쳐 옥련동에 지금의 교사를 지었다. 인천 '송도(松島)' 가까이 있지만 학교 이름은 엄연한 '송도(松都·개성의 옛 이름)'다. 재단 이사장인 이회림(李會林)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도 개성이 고향이다. 현재 송도고는 높은 명문대 진학률은 물론 농구·야구·빙상·유도 등 스포츠에서 활약상이 뛰어나 인천에서 손꼽히는 인기 학교다.
송도고와 총동창회는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동문과 교사, 재학생이 올해 개성의 옛 교사를 찾아가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장 회장 등은 "개성공단이다 뭐다 하지만 아무 대가 없이 북한에서 민간인 교류를 허락해줄까…"라면서도 기대를 감추지 못한다.
이미 고인이 된 최규남(崔奎南) 서울대 총장, 장기려 부산청십자병원장, 김성열(金成悅) 전동아일보 사장을 비롯해 이세호(李世鎬) 전 육군참모총장, 신동관(申東寬) 태평양 고문, 연만희(延萬熙) 유한양행 고문, 최진순(崔鎭順) 전 청풍 회장, 이일화(李一和) KBS 보도본부장, 최용규(崔龍圭) 열린우리당 의원, 농구 선수 출신 이충희·강동희씨 등이 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