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인천 송도고등학교 출신으로 정부 독립유공자로 추서됐거나 신청 대상자로 오르게 된 인물은 97명이다. 이 가운데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가 최근 송도고 교사·학생 출신 73명의 독립유공자 신청 작업을 진행하는 등 대다수를 발굴해 재조명하고 있다.
이번에 재조명한 독립운동 가운데 송도고의 전신 한영서원에서 주도한 '한영서원 창가집 사건'이 눈길을 끈다. 1915년 한영서원 고등과를 졸업한 이경중은 개성 남감리교 교회 권사를 맡아 북간도 명동촌의 교회와 명동학교를 방문했고, 그 학교 창가집(찬송가집)을 가져와 한영서원 초등과 교사인 신영순에게 전달했다.
신영순은 음악교사 정사인, 한영서원 졸업생으로 교사·교직원으로 활동하던 이상춘, 백남혁, 오진세 등과 함께 비밀리에 모여 명동학교 창가집에 한말의 애국 가사, 이순신·안중근 등의 업적을 담은 창작가사를 보태고 작곡도 했다.
같은 해 7월 이들이 만든 100곡의 창가집 40부를 한영서원과 개성 호수돈여학교에 배포했고, 이듬해에는 100곡을 추가한 창가집 99부를 제작해 함경남도 학교에 전달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창가집 속 가사 중 '왜왕을 가복(家僕·하인)으로 삼고, 왜왕비를 하비(下婢·하녀)로 삼아'라는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일제는 교사와 악대부 학생 수십명을 체포해 3개월 동안 혹독하게 심문했다.
그 결과 신영순·백남혁은 징역 1년6개월, 정사인·오진세·이경중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한영서원 교사·교직원·졸업생·재학생 등 23명이 고초를 겪었다.
이후 1919년 개성의 3·1 만세시위에서 송도고보와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이 중 30여명의 학생이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인천대 독립운동연구소는 개성 3·1 만세시위 관련 독립유공자로 포상받은 일부 인물 외 대다수에 대해 포상을 신청했다.
1932년 4월 '개성 격문 사건' 때도 송도고 출신들이 주도해 광주학생의거를 기념하고 대대적인 학생운동을 일으키고자 격문을 배포하는 등 항일운동을 펼쳤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일제의 고문으로 옥사한 왕창기 의사, 이정렬·임홍빈 지사 등 20명에 대해 이번에 포상을 신청했다.
1930년대 사회주의·반제국주의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이재유(李載裕·1905~1944) 또한 송도고 출신이다. 그는 2006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황석영 작가가 지난해 펴낸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는 이재유 등 굵직한 활동가들을 도운 '이름 모를 독립운동가·노동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뼈대로 삼았다.
이번에 뒤늦게서야 포상 신청이 된 송도고 출신 독립운동가 73명도 '철도원 삼대'의 그들처럼 이름 모를 운동가에서 정부가 인정한 유공자로 재조명받을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