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인천 송도고(松都高·연수구 옥련동)는 올해 개교 115년을 맞은 전통의 학교다. 지난해엔 개교 114년 만에 100회 졸업생 343명을 배출해 교육계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렇게 되기까지엔 일제에 의한 강제 휴교와 한국전쟁 피란 개교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송도고는 본디 인천이 아니라 북한 개성에서 1906년 10월3일(개천절) 한영서원으로 문을 열었다. 일제의 사립학교 규칙 개정에 따라 한영서원은 1917년 송도고등보통학교로 바뀌었다.
송도고는 이후 한국전쟁 발발로 1950년 12월13일 무기한 휴교를 단행하고, 개성 교정을 뒤로 한 채 피란길에 오른다. 전쟁이 장기화자 동문들은 1952년 봄 부산에서 재단 이사회를 열고 일단 임시 재개교를 결정했다. 그리고 경기도와 강화도에 흩어져 있는 개성과 연백 등지의 피란 학생을 고려해 인천에 학교를 다시 세우기로 의견을 모았다. 결국 1952년 4월 중구 송학동에서 피란 학생 500여명을 수용해 학교를 열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인 1953년 11월엔 지금의 송도중학교 자리(중구 답동)로 이전하며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이어 1983년 9월 옥련동에 학교를 새로 지어 옮긴 후 오늘에 이른다. 송도중은 답동 교정에 아직 남아 있다.
이런 송도고가 '제2의 장기려 박사' 양성에 힘을 쏟고 있어 눈길을 끈다. 2019학년도부터다.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며 가난한 환자를 돌보는 데 평생을 바쳤던 장기려 박사(1911~1995)가 바로 송도고 출신이어서다. 그는 1928년 당시 개성에서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송도고는 장 박사처럼 인류애를 실천하는 의료인 양성을 목표로 '의학중점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학생들은 장차 의료인으로 갖춰야 할 품성과 가치관 교육을 받는다. 학교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교육을 실시한다. 학생들은 학기 중엔 인하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대병원 등지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방학 중엔 '장기려 박사 기념재단'이 주관하는 의료봉사 프로그램 등에 참가한다. 현재 1학년 24명, 2학년 25명, 3학년 20명이 의학중점학급에 다니고 있으며, 내년에 첫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장 박사는 집 한 칸 마련하지 않고 병원 옥탑방에서 평생을 살며 인술을 실천했던 청빈한 의사로, 그 명성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의 월급을 가난한 환자에게 내주었던,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의사였다. 의사를 못 보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살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켜낸 인물이다. 오늘날 장 박사를 일컬어 '한국의 슈바이처'라 부르고 있는 이유다.
송도고 교훈은 '봉사'이고, 교시는 '사람이 먼저 돼라'이다. 장기려 박사와 같이 따뜻한 인류애를 기초로 한 의료인을 키울 수 있도록 학교와 학생들의 노력이 배가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