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전
산이 있기에 산에 오른다는 산사나이같이 농구가 좋아서 농구와 더불어 20년을 살아온 인천 송도고 전규삼「코치」(66). 강산이 두번이나 바뀌었을 그런 세월을 농구와 함께 살아온 외곬인생이다.
『만년「코치」』『농구장의 할아버지』. 농구인들은 모두 그를 이렇게 부르고 있다. 『농구「코치」의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백지인걸요.』 농구에 온통 젊음을 바쳐버린 노「코치」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이나 오히려 겸손해한다.
지난해 6월「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유희형과 서상철 김동광(기은)·한영규 김인진(이상 산은)·김형년(삼성)·이충희(고려대)등 기라성같은 국가대표선수들이 모두 전「코치」의 정성어린 손길에 의해 오늘의 「스타」가 됐다.
전「코치」가 농구지도자로서 송도고「코치」를 맡은 것은 61년. 개성송도중 3년 때 농구선수를 했던 그는 일본「호오세이」대를 졸업한 후 55년 인천에 송도고가 문을 열 때 교사로 부임했다. 그러나 60년에 교사직을 떠나자 학생들이 찾아와 농구를 지도해달라는 간청으로 61년에 「코치」생활을 시작한 후 지금껏 20년간 외길로 살아온 것이다.
한달에 받는 보수는 고작 20여 만원. 그러나 불만은 없다. 『죽을 때까지 이 길로 갈 수 있다면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그는 눈앞의 우승보다는 먼 훗날에야 빚을 내는 그런「스타」가 되도록 선수를 키운단다.
그동안 10여번이나 송도고를 전국규모대회에서 우승으로 이끌어 농구의 명문학교로 키운 전「코치」는 선수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할아버지』라고 불러달라며 때로는 엄하고 그리고 부드러운 지도자로 「코트」에 선다.
『모든「스포츠」가 그렇겠지만 농구에서는 기본기가 제일 중요합니다. 몸의 자세·발놀림 등 기본기의 하나 하나가 정확해야 전체가 완벽해지는 겁니다. 이 완벽함이 농구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요인이고, 바로 이것이 미의 극치에 이르게 되는 길이지요』 농구이전에 한 인간을 만든다는게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농구에 대해서도 『너무 단순하다』면서 『다양성과 변화있는 「플레이」가 되도록 기본기를 정확히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성장한 제자들이 집을 찾아와 인사를 받을 때 작은 보람을 느끼나 제자들이 모두 훌륭한 선수가 될 때가 더 기쁘다고 했다.
『눈을 감을 때까지 농구와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전「코치」는 『송암어린이 농구교실이 28일 발족돼 더 없이 기쁘다』며 주름진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다. <조이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