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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를 이어온 교육 이수영 회장은 이회림 명예회장의 대를 이어 2007년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
송도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이 학교의 명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회사
10 직원들에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습관과
사고방식’을 강조한 것처럼, 학생들에게도 이와 같은
정신을 일깨워주고 싶어 했다.
2009년 이수영 회장은 선친으로부터 이어온 장학
사업 재단인 회림육영재단을 송암문화재단과 통합했다.
이를 계기로 동시대적 방식으로 나눔을 실현할 수 있도록
재단을 개편하고, 보다 체계적인 인력 시스템을 갖추게
“ 됐다. 농촌을 중심으로 국내 다문화 가정이 빠르게
이수영 이사장이 송도학원 학생과 교직원들을 증가하는 추세에 맞춰 ‘송암다문화장학금’을 개설하고,
결연을 맺은 학교에서 장학생을 선발해 ‘송암장학금’을
아끼는 마음은 더없이 깊었어요. 교직원
인사를 비롯해 학생들 교육까지 일일이 전달했다. 일회성이 아니라 선발된 학생이 대학을 졸업할
직접 챙겼죠. 또 과학교육에 대한 관심도 때까지 학비를 지원하며 든든한 후원자가 되길 자처했다.
상당했어요. 송도고가 과학중점학교로 송암미술관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 사업에서는
지정되면서 극구 사양하는 저를 결국 학교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젊고 신선한 방식으로
부이사장으로 앉히고 과학교육 진흥을
작가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길 바랐다. 이회림
위해 힘썼죠. 송도학원에서 과학교육이
명예회장이 고서와 고화, 골동품 수집과 전시에
차지하는 역사를 강조하면서 시설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학교 재정상 집중했다면, 이수영 회장은 젊은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해결할 수 없는 지출은 사재를 털어서라도 지원하는 일에 힘썼다. 2010년 OCI미술관을 개관한 후
도왔어요. 심지어는 학생들의 교양과 정서 ‘OCI 영 크리에이티브(Young Creatives)’ 프로그램을
교육까지 챙겼지요. 대기업 회장으로서는 신설해 매년 신진 작가를 선발하고 창작 지원금과 함께
과도할 정도로 학교와 학생 교육에 열정을
개인전을 열어주었다. 또 작업 공간이 없어 어려움을
쏟았습니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수영 송도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이수영 회장
겪는 작가들을 위한 창작 스튜디오를 오픈해 신진
이사장은 언제나 바른 길로 가야 하는 “
작가들이 공간에 대한 부담 없이 창작 활동에 전념하도록
선구자였고, 한번 마음먹은 일은 꼭 이루어야 회장님은 틈만 나면 학교에 들르셨어요. 학생들과 만나 대화하는 걸
하는 완벽주의자였습니다. 현실을 더 넓고 도왔다. 한국의 예술성을 알리고자 해외 교류 프로그램을
즐거워하셨죠. 예술과 문화, 인성을 키워주는 책이나 전시를 발견할 때면 학생들
슬기롭게 수용할 줄 아는 혜안을 지닌 이 운영하며 국제 무대로 나갈 수 있는 가교 역할을 맡은
얘기를 먼저 꺼내셨을 정도로요. 사비를 들여 전교생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하고,
시대의 리더였고, 항상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도 이수영 회장의 생각이었다. 미래의 꿈을 지닌 인재를
<투란토트> 같은 뮤지컬이나 피카소 ·이중섭 등 유명 화가의 전시가 열릴 때면
진취적인 지도자였으며, 정을 나눈 친구이자, 지원하는 일은 진취적이고 도전 의식이 강한 이수영 입장권을 구입해 보내기도 하셨어요. 워낙 미술과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기도
배울 점이 많은 신사였죠. 회장에게 가장 가치 있는 투자였다. 했지만, 좋은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걸 학생들에게
” 알려주고 싶어 하셨죠.
- 우종천(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명예교수,
전 학교법인송도학원 부이사장) ”
- 이수영 회장 비서 김현주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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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4. EXPLORING NEW HORIZ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