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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I R&D의 메카 2009년 11월 경기도 성남시 늘기 시작했다. 시대 흐름에 발맞춰 유능한 여성 인력
중앙연구소의 완공 9만1,198m 땅에 OCI 확보에도 힘써 2003년 연구소 최초로 여성 연구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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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연구소 신축 건물이 선발한 이후 2015년 연구소 전체 인원의 20%에 달하는
완공되었다. 기존의 오래된 인력을 확충하기도 했다. 평소 기술 개발에 관심이 많은
단층 건물을 철거하고 지하 2층, 지상 5층에 연구소를 데다 그 관심만큼이나 풍부한 지식을 겸비하고 있던
OCI 중앙연구소 전경
신축했다. 해외 유수의 기업과 합작 사업을 추진했던 이수영 회장은 중앙연구소의 분기별 회의 때면 빠짐없이
이수영 회장은 일찍부터 연구 개발(R&D)에 대한 참석해 연구원들의 신제품 개발 이슈와 개발 관련 토론을
2009년, 경기도 성남에 들어선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화학 분야에서는 기술 개발을 경청하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 않으면 기술을 도입하거나 합작하는 것 자체가 1982년 설립 초기 중앙연구소는 소다회 관련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통상 외국 기업들은 최소한 그 연구를 비롯해 유·무기 화학 제품을 새롭게 선보였고,
기술의 60~70% 수준은 알고 있거나 짧은 기간 내에 1990년대 들어 과탄산소다를 개발하여 국내 최초로
기술을 자체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 기술 이전을 ‘표백제’를 생산해 ‘IR52 장영실상’을 수상했다.
해주었기 때문이다. 흄드실리카를 국내 최초로 생산했고, OCI를 성장시킨
OCI 중앙연구소는 기술 집약적 고부가가치 폴리실리콘 사업의 성공도 실리콘 개발에 매진한
상품 개발 및 화학 분야의 첨단 미래 산업 기술에 대한 중앙연구소의 노력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현재 OCI
연구 개발을 위해 1983년 인천에 처음 설립되었다. 중앙연구소는 신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기초
설립 당시만 해도 민간 연구소의 효시 격으로 규모가 화학제품(Basic Chemical), 탄소(Carbon Material)
큰 편이었다. 연구소 설립 직후에는 염화제2철 개발에 관련 분야에서 지속적인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성공해 구미단지에 공장을 건설한 사례처럼 현장 밀착형 OCI 중앙연구소는 R&D 메카로서 사업 전략과 연계된
연구에 집중했고, 이는 공장 안정화와 제품 다변화에 핵심 기술 확보와 최신 응용 제품 개발, 기존 제품의 사업
크게 기여한다. 또 중앙연구소의 기술력은 OCI가 해외 경쟁력 강화 등 성과 지향적 연구 체계를 구축하고 사내
유수의 기업과 합작을 성사시킬 때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첨단 기술 첨병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합리적이고 실용주의적이던 이수영 회장은 중앙연구소의
연구도 학문적 연구보다는 사업에 직접적 이익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연구를 원했고 이를 위해 사업 개발
담당자를 연구소장으로 보내는 파격적 인사를 단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수영 회장의 실용주의적 경영은 오늘날
OCI의 성장 동력이 된다.
인천에 있던 중앙연구소가 성남으로 자리를 옮긴
건 제철화학을 인수한 이후였다. 당시 제철유화에서
성남에 작은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었고, 2000년 7월
인천보다 입지 여건이 우수한 성남으로 합병·이전하게
된 것이다. 2009년 서울과 가까운 성남에 시설 좋은
연구소가 건립되자 우수한 석·박사급 재원들의 지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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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SOO YOUNG 1942-2017 STORY 4. EXPLORING NEW HORIZONS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