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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림 명예회장과 이수영 회장 두 분 모두 인천상공회의소                                                                                            여유로운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점심시간을
            INTERVIEW                                        회장직을 맡아 경제적·산업적으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INTERVIEW                                       80분으로 늘렸고, 중간고사 일정을 조정해 시험이 끝나면

                                                             정말 많이 봉사하셨죠. 두 분 모두 송암문화재단 일을 아주                                                                                           항상 나흘 동안 쉴 수 있도록 했죠. 처음엔 선생님들
            지용택                                              세심하게 챙기셨는데, 이회림 명예회장이 재단 사업의                                               오성삼                                             사이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부임한 첫해에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큰 틀을 마련했다면, 이수영 회장은 시대 변화에 맞춰                                              송도고등학교 17대 교장                                   동아일보 고교 평가에서 인천 시내 고등학교 중 송도고가
                                                             디테일하고 새로운 것들로 그 안을 채워나갔습니다. 최근                                                                                             6위를 차지했어요. 그다음 해엔 1위가 됐고 그후 5년 동안
                                                                                             2
                                                             학익동의 OCI 공장 부지 중 약 3만3,000m 를 인천시에                                                                                         1위를 놓친 적이 없죠. 송도고는 일반적인 평준화 학교로
                                                             기증해 현재 문화·예술 단지를 조성 중이고요. 인천시와                                                                                             특목고나 자사고처럼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별할 수
                                                             인천 시민의 긍지를 높이는 데 두 분 공이 크지요.                                                                                               없어요. 그럼에도 명문대에 많은 학생을 진학시키면서
                                                                                                                                                                                        학교의 위상도 높아졌죠.
                                                             이수영 회장은 송도학원을 통해 교육 사업에도 각별한
                                                             애정을 쏟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수영 회장의 뜻이 학교 운영에 적용된 사례가 있나요?
                                                             인천의 사학 명문인 송도고등학교가 지금의 모습으로                                                                                                국제화 프로그램에 기대하는 바가 크셨어요. 글로벌
                                                             성장한 건 이수영 회장 덕분이에요. 2007년 이사장직을                                                                                            스탠더드에 맞는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영어와 일본어,
                                                             맡으면서 기존의 정형화된 교육 방식을 버리고, 학생들이                                                                                             중국어, 베트남어까지 모두 원어민 교사를 배치했죠. 재단과
            오랜 시간 이회림 명예회장, 이수영 회장과 가깝게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지요. 아주                                               이수영 회장의 송도고등학교 교장 선출 방식부터가                      연수구청의 지원을 받아 학생들과 해외 탐방을 떠난 적도
            지내셨죠. 두 분을 어떻게 기억하세요?                            훌륭한 교육 철학을 갖고 있던 오성삼 교장 선생님을                                               획기적입니다.                                         있는데, 해외 유명 대학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이회림 명예회장님은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스케일이                      모셔온 데다 교육과정이나 수업 방식 같은 세부적인 부분도                                            어느 날 신문에 교장 채용 광고가 게재됐더라고요. 아주                  실리콘밸리 등을 견학할 수 있었죠. 과학에도 관심이
            컸어요. 송상의 기질을 타고난 분이었죠. 이수영 회장은                   의견을 나누면서 면학 분위기를 조성했어요. 명문대에                                               신선했죠. 수십 년 동안 사범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높으셨어요. 주변의 유명 과학자나 교수들에게 조언을
            말수가 적고 점잖은 사람이었어요. 그 또한 아버지의 송상                  진학하는 장학생에게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고등교육에 대한 아쉬움이 컸어요. 송도고는 100년이                   구하는 일부터 세세하게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죠.
            기질을 물려받아 이 시대에 보기 드물 정도로 깨끗한                     지급하는 획기적인 제도를 도입해 이 지역 인재들을 모두                                             넘는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학교로서 장점도 많았지만,
            기업인이었고요. 무슨 일이든 왜곡하는 법이 없었죠.                     송도고로 불러들였고요. 그 덕분에 단숨에 학업 성적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좇기엔 너무 틀에 박힌 교육                    재단 이사장으로서 이수영 회장은 어떤 분이었나요?
            사업하는 사람들은 그때그때 시기에 따라 다른 모습을                     높아지면서 일반 학교임에도 과학고나 특목고, 자사고보다                                             방식을 반복하고 있었죠. 아마 이수영 회장 눈에도 그런                  학교와 학생에게 필요한 부분, 선생님들의 불편 사항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이는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그런                    더 많은 학생을 명문대에 진학시켰죠. 사실 인천은 2000년                                          점이 보였을 테고, 이를 탈피하고 싶으셨을 거예요.                    들으면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셨어요. 이사장을
            모습을 보이지 않았죠. 대단히 훌륭한 성품이에요.                      전후로 거의 10년 동안 정체성 없는 교육 방식을 전개해                                                                                            맡으며 가장 먼저 하신 일이 13억 정도를 들여 급식관을
                                                             이 문제가 신문에 날 정도로 심각했어요. 송도고가 이렇게                                            송도고가 지금과 같은 명문고가 되기까지 두 분의 노력이                  짓는 것이었죠. 장학금 지원과 집안 환경이 어려운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송암문화재단이 보여온 일련의                    발전되기 전까진 공부 잘하고 교육열이 높은 집들은 죄다                                             굉장히 크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이 변화됐나요?                   학생들을 돕는 일에는 늘 적극적이었고요. 그럼에도 절대
            활동이 인천 지역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서울 강남으로 이사를 가버렸죠. 송도고를 롤모델 삼아                                              학교 교과과정에 대학과 같은 학부제 운영을 도입했어요.                  학교 운영에 간섭하는 분이 아니었어요. 사립학교는
            1968년 인천 남구 학익동에 소다회 공장을 준공하면서                   인천 교육 환경이 개선된 거예요. 송도고가 명문 학교가                                             수능 점수와 내신만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                  대부분 재단의 입김이 강해요. 자신들이 원하는 틀 속에
            OCI와 인천의 인연이 시작되었죠. 그때 사업이 큰 성공을                 되면서 이 주변 땅값과 집값이 모두 오를 정도였죠. 이 모든                                          스스로 본인의 적성과 특기, 미래 지향적인 사고가                     학교를 집어 넣으려는 것이 우리나라 사립학교의 현실이자
            거두면서 인천이 OCI의 고향이 된 거예요. 인천을 모태로                 일을 이수영 회장이 해낸 거예요.                                                         가능하도록 지도하고 싶었죠. 요일마다 강사를 초빙해                    문제점이죠. 이수영 회장은 재단 이사장으로서 역할의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서 인천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세분화된 교육 방식을 적용했고요. 사회과학 중점                      경계가 분명하셨고, 일관성 있게 그 모습을 유지하셨어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테고요. 사업의 근간이 된 인천                                                                                             과정을 신설해 법학, 행정학, 경영학을 미리 경험해볼                   이런 점이 학교 발전의 근간이 됐다고 생각해요. 창의적인
            시민에 대한 보답으로 이 지역을 발전시킨 거라 생각해요.                                                                                             수 있도록 했죠. 학생들의 창의력을 길러주기 위해선                    학교 경영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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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4.  EXPLORING NEW HORIZ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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