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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동양화학 첫 출근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전문 경영인으로의 시작
경영대학원에서 수학 중이던 이수영 회장은 1968년 아버지
송암 이회림 명예회장의 갑작스러운 부름을 받고 서둘러
70 귀국길에 오른다. 당시 동양화학은 인천 소다회* 공장을
준공한 이후 사업 부진으로 최악의 경영 위기를 맞았고, 이회림
명예회장은 회사를 살릴 구원투수로 큰아들 이수영에게 SOS를
보낸 것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라면 아들을 바로 동양화학에
투입했지만 이회림 명예회장의 뜻은 달랐다. 이수영 회장은
먼저 영풍상사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1년 동안 업무를 익히고,
1969년 동양화학 계열사인 청구목재 기획실장으로 다시
1년을 일하게 된다. 이에 대해 송암동우회** 전 김용정 회장은
‘역자지교(易子之敎)’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전통적으로 우리 선조들은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교육했습니다. 부모 자식 사이에는
무언가를 가르칠 때 교육보다는 정에 이끌리기 쉽기 때문이죠.
개성상인들은 이러한 자식 훈련법을 따라 장사를 시작하기
전 먼저 남의 집 점원으로 보내어 기본부터 배우게 했습니다.
개성상인 출신인 이회림 명예회장님도 자식들에게 꼭 그러한
단계를 밟게 하셨죠. 훌륭하게도 자식들 또한 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잘 따라주었고요.”
다년간의 해외 유학 생활로 자연스레 글로벌 감각을
익히고 2년에 걸친 실무 경험을 통해 경영의 기본기를 닦은
이수영 회장은 1970년 12월, 동양화학 전무이사로 첫 출근하며
전문 경영인의 길에 들어선다. 스물아홉 살, 이수영이라는 젊은
피가 동양화학에 수혈되는 순간이다.
이수영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의 입사 초기, 인천 소다회 공장에서
프랑스 롱프랑사 직원들과 김명식 공장장(오른쪽에서 첫 번째)과 함께
소다회
탄산나트륨의 공업명으로 화학 산업의 기초 원료 중 하나.
중화제, 세제, 제약, 섬유를 비롯해 유리 공업, 철강 산업
등 다양한 제품에 사용되어 ‘화학 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소다회는 다른 화학물질과 합성하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예를 들어 소다회가 과산화수소와 화합하면
과탄산소다가 된다.
한국에 돌아온 후 가장 먼저 경영 수업을
시작한 영풍상사의 사원 임명장(위)과 1970년대, 송암동우회
이수영 회장의 동양화학 사원증(아래) 퇴직한 OCI그룹의 임원진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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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1. A NEW BEGIN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