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3 - LEESOOYOUNG
P. 163
“
가족들에게 존재 자체로 사실 부모가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닐 텐데도 오빠는 그런 부분에
충분했던 이수영 회장. 부모를 개의치 않고 항상 부모님을 공경했어요. 장남으로서 다른 가족
절대적 존재로 여기며 평생 누구도 누리지 못한 좋은 환경을 제공받았던 것에 대한 보은의
그 뜻을 거스르지 않았고, 의미도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패션으로 얘기하자면 미국의
자신에게는 더욱 엄격한 전통적 동부 스타일이던 오빠는 정도를 중시하며 관습을 지키던
잣대를 두고 행동한 동생이자 고지식한 사람이었어요. 한편으론 이와 대립되는 현대적 면도
오빠, 형으로서 그의 말
지니고 있었지만요. 보수적인 집안의 장남이다 보니 많이
자체에 ‘존엄’이 실릴 수밖에
힘들었을 거예요.
없는 인물이었다. 동생 이정자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상이 높았던 오빠가 자신이 정해놓은
여사는 그를 이렇게 회상한다.
길로 가기 위해 얼마나 엄격하게 자신을 재단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것이죠. 가끔 스스로를 느슨하게 풀어놓을 수도
있어야 하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경우죠. 오빠는 몸이 아프면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이니 얼마나 환자가 많겠어요. 그래도
절대 아는 사람을 통해 빠르게 의료진을 만나지 않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예약해서 오랜 시간 기다려 진료를 받았죠. 제가
물었죠. 인맥도 많아서 부탁하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진료받을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느냐고요. 그랬더니 싸울 기세로 “그걸
왜 그렇게 하니”라며 따져 묻더라고요. 이런 부분이 특권주의일
수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편의를 위해 눈감고
넘어가는 부분도 있잖아요. 바쁜 사람이라 시간도 중요할
테고요. 그런데도 그 과정을 절대 건너뛰지 않는 사람이에요.
”
초등학교 1학년 때 소풍 사진. 셋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수영 회장. 맨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수영 회장의 남동생 이복영을 안고 있는 모친 박화실 여사
이수영 회장의 부모님과 형제들, 일가 친척이 함께 촬영한 가족사진
162 163
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1. THE EARLY Y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