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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외교로 맺은 결실 이수영 회장이 세운 또 북한은 미수교 국가 선수가 남한에 가면 돌을 맞을
다른 공은 스포츠 외교다. 거라고 선전했으나 실제로 그들이 와서 겪은 상황은 전혀
한국에서는 그동안 국제 달랐다. 그 결과, 미수교 국가 선수들이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를 한 번도 유치한 적이 없었다. 그는 해외의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고,
여러 회사와 합작을 추진하던 능력을 발휘해 IOC 88올림픽은 이념과 상관없이 전 세계가 한자리에 모인
조직위원회, ISU 임원들과 만나 소통하면서 국제 대회를 성공적 대회로 기록됐다.
한국에서 개최하는 데 성공한다. 1988년 ISU 주니어 이수영 회장은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에
스피드스케이팅 세계 선수권 대회를 필두로 1991년 앞서 2월에 열린 캘거리 동계 올림픽 폐막식에서
제1회 ISU 세계 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 한국 여자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 팀이 공연을 할
대회, 1992년 ISU 월드컵 스피드스케이팅 대회 등 여러 수 있도록 힘썼다. 당시 빙상연맹 부회장으로 일했던
국제 대회를 한국에 유치해냈다. 전 세계 동계스포츠인을 아시아빙상경기연맹 장명희 회장은 그때의 일을 이렇게
한국으로 초대해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미지를 깨고 회고한다. “다른 나라에서 열린 올림픽 폐막식에서
새롭게 달라진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를 한국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 팀이 공연한 일은
마련한 것이다. 처음이었어요. 길옥윤 씨가 이 공연을 위해 ‘아침의
가장 큰 성과로 꼽는 일은 1985년 3월 동독, 소련 나라’라는 곡을 새로 만들었고, 인기 가수 권성희 씨가
등 냉전시대 미수교 국가의 선수를 한국에 초대한 것이다. 노래를 불렀죠. 아주 훌륭한 공연이었고 관중들에게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미수교 많은 갈채를 받았어요. 모두 이수영 회장의 공입니다.
국가의 선수가 과연 한국에 올 것인지’ 참석 여부가 캐나다에도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 팀이 있지만
이슈였다. 이수영 회장은 세계 피겨 선수권 대회에 참석차 IOC 조직위원회와 사전 회의를 통해 곧 한국에서 하계
일본에 방문할 예정인 동독·소련 선수들을 한국에 초청, 올림픽이 열리니 한국 팀이 공연하는 걸로 하자며 합의를
1985년 소련과 독일 등 해외 선수들이 내한했을 당시
시범 경기를 개최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당시 ISU 이끌어낸 거죠.”
촬영한 기념사진. 두 번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수영
회장, 그 옆의 붉은 의상을 입은 선수가 카타리나 비트, 회장이던 올라프 포울센(Olaf Poulsen), 피겨스케이팅
중앙에 체육부 초대 장관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젊은 시절 부회장이던 로런스 데미(Lawrence Demmy)와
브라이언 오서의 모습도 보인다.
비밀리에 협의하고 준비한다.
1985년 3월 27일, 세계 정상의 피겨스케이팅
스타들이 한국을 찾았다. 소련 12명, 동독 1명, 체코
1명 등 선수 20명과 임원 6명이 내한했으며 그중에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동독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카타리나 비트(Katarina Witt)와 훗날 김연아
선수의 코치로 활약한 브라이언 오서(Brian Orser)도
포함되어 있었다. 언론과 대중은 열광했다. 선수들은
대구와 서울에서 두 차례 시범 경기를 하며 환상적인
묘기를 선보였고, 빙상연맹에서는 이들이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돌아갈 수 있도록 극진히 대접했다.
1985년 3월 15일 자 <동아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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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3. INNOV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