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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계스포츠 강국을       당시 여러 기업에서 스포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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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독 동계스포츠에는 관심이
                                                                                  부족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도
                                                             이수영 회장은 빙상연맹의 회장직을 기꺼이 수락했다. 전
                                                             빙상연맹 이사로 일했던 OCI 백우석 부회장은 그의 선택을
                                                             이렇게 추측한다. “빙상연맹은 비영리단체입니다. 상관이
                                                             마음에 안 든다고 아랫사람을 쉽게 좌지우지할 수 없는
                                                             조직이지요. 상하관계가 분명한 회사에서 리더를 하는 것은
                                                             쉽지만, 빙상연맹 같은 사회 단체는 다양한 의견과 대립을 잘
                                                             조율해서 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수준이 다릅니다. 이회림 명예회장님이 ‘이거 할 수 있으면 크게
                                                             배우는 거야’라고 말씀하신 걸 보면 이수영 회장이 빙상연맹을
                                                             잘 아우르며 끌고 나가는 게 큰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이수영 회장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뒤지지 않는 스포츠
                                                             문화와 시스템을 보유하기를 바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                                           내놓을 수 있는 것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그는 19대부터 22대

                 이수영 회장님은 경제·                                회장까지 역임한 후 1993년 5월에 퇴임했지만 자리에서 물러난
                 스포츠 분야에서 오랫동안                               다음에도 동계스포츠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었다. 2018년 평창
                 다양한 경험을 쌓아오신
                                                             동계올림픽이 개최된다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일찍부터
                 분입니다. 저희는 이런 점을
                                                             티켓을 예매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친분을 쌓아온 ISU
                 높이 사 회장님이 중책에서
                                                             오타비오 친콴타 명예회장과 평창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평창
                 물러난 뒤에도 오랫동안
                 건설적인 관계를 맺어왔어요.                             올림픽이 열리기 전, 그가 아쉽게 세상을 떠나면서 만남은
                 저 역시 한국에서 이 회장님을                            성사되지 못했다.
                 뵐 때마다 쇼트트랙뿐 아니라                                 동계스포츠 강국을 꿈꾼 그의 열망과 업적은 한국뿐
                 전반적인 사항에서 조언을                               아니라 국제 동계스포츠계에 큰 본보기가 되고 있다.
                 얻기도 했죠. 회장님의 부고는
                 스포츠계에 매우 큰 손실이라
                 할 수 있어요. 결코 쉽지
                 않겠지만 한국이 조만간 이런
                 분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1992년 1월 26일 자 <경향신문> 기사  - ISU 오타비오 친콴타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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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E SOO YOUNG  1942 – 2017SOO YOUNG  1942-2017                                                STORY 3.  INNO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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