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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훈장증을 받고 있는 이수영 회장이 1989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이수영 회장 선수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모습
1978년, 19대 대한빙상경기연맹(이하 빙상연맹)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회장으로 추대된 이수영 회장은 한국에 처음으로 새로운 시도와 투자는 곧 성과를 보였다. 1986년 일본 “
쇼트트랙 종목을 들여온다. 이수영 회장은 올림픽 삿포로에서 열린 제1회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동계스포츠 불모지이던 이수영 회장님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쇼트트랙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갖고
한국에서 쇼트트랙이라는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회장님은 스피드스케이팅이나 피겨스케이팅 같은 종목은 이미
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있는 쇼트트랙에서 희망을 쇼트트랙 선수들이 금·은·동메달을 각각 하나씩 따며
효자 종목을 육성해 전 강대국이 많았기 때문에 한국이 실제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종목에 집중했습니다.
보았다. 절대 근력은 떨어지지만 순간 순발력이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이 쇼트트랙
세계에서 독보적인 나라로 바로 쇼트트랙이었죠. 실제로 한국은 매우 오랫동안 쇼트트랙 강국으로 확고히 자리를
한국인이 잘할 수 있는 종목이 바로 쇼트트랙이라고 종목에 출전한 이래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한 대회였다. 각인시킨 이수영 회장.
지켜왔기에 올림픽이나 세계챔피언십도 마치 한국 챔피언십으로 느껴질 정도였어요.
판단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육성한다. 그로부터 2년 후, 1988년 캐나다 캘거리(Calgary) 국제올림픽위원회(IOC) ISU에 있으면서 이처럼 한 가지 종목에 헌신하신 분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특히
위원이자 국제빙상경기
빙상연맹 회장으로서 그의 바람은 오직 한국이 동계올림픽에서는 시범 종목으로 진행된 쇼트트랙 쇼트트랙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때가 기억에 남네요.
연맹(ISU) 명예회장인
동계올림픽 강국이 되는 것이었다. 이수영 회장은 1,500m 경기에서 김기훈 선수가, 3,000m 경기에서는 당시 쇼트트랙 남자 계주에서 한국은 스케이트 날 하나도 안 되는 간발의 차로 캐나다를
오타비오 친콴타(Ottavio
빙상연맹을 맡자마자 선수와 코치를 외국으로 많이 이준호 선수가 출전해 각각 금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Cinquanta)는 그를 이렇게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제가 ISU 기술위원회 위원장이자 ISU 기술 대표로 그
데리고 다녔다. 그전까지 선수단이나 임원은 외국 이뤄내면서 쇼트트랙을 통해 한국이 지닌 저력과 기억한다.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합니다. 그때 제가 이 회장에게 저희가 촬영한 결승선
통과 사진을 직접 전해주기도 했지요. IOC 역사상 처음으로 새로운 종목에 완전히
경험이 많지 않아 언어 소통이 어려웠고 외국에 가면 가능성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헌신하는 인물을 찾은 겁니다. 저는 이 회장님의 그런 점을 배우고 싶었고 회장님도 항상
시합만 할 뿐 그 외에 다른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자신의 활동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셨지만, 그분은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특별한
않았다. 선수들에게 오직 정신력만 강조하던 시절이었다. 능력을 지니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수영 회장은 해외에서도 당당하게 행동하려면 ”
국내에서부터 글로벌한 시스템과 마인드를 가지고
이수영 회장 내외와 ISU 오타비오 친콴타 명예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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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3. INNOV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