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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쇼트트랙 선구자인데요, 당시 대한빙상경기연맹 수 있었어요. 저에게는 정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데 도움이 될 방향을 제시해주셨기에 선수 생활을
INTERVIEW 회장이던 이수영 회장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힘든 순간이었는데 참고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하며 만난 회장님이 아닌 인생의 스승님에 더 가까운
회장님은 중학생 때부터 쭉 뵈었어요. 키도 크시고 마지막까지 시합할 수 있는 힘을 주셨기에 그 대회에서 분이었습니다.
김기훈 스마트한 인상이었죠. 말씀은 아끼고 늘 선수들을 종합 2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 인자하게 지켜봐주시곤 했어요. 쇼트트랙을 인기 이수영 회장이 빙상연맹 회장직을 15년간이나 할 수
울산과학대학교 사회체육과 교수
종목으로 만드는 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셨기에 이수영 회장은 선수가 메달을 따면 보통 어떤 이야기를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저에게는 좋은 밑거름이 되어준 감사한 분이죠. 했나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아우르고
메달을 따면 많은 분이 축하말을 쏟아내지만 회장님은 다독이면서 조직을 운영하셨던 게 컸던 것 같아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였다가 쇼트트랙으로 종목을 바꾼 담백하게 “수고했다. 축하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빙상연맹이 매우 어려운 시절부터 회장을 맡기 시작해
것도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습니다. 그거 빼고는 선수들이 시합하면서 부담감을 가질까 봐 메달을 따고 인기를 얻으며 성장할 때도 조직에서 커다란
다른 스포츠계는 메달을 많이 따고 전망이 있는 종목을 얼굴을 자주 비치지 않으시고 뒤에서 묵묵히 최고의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죠. 당시 빙상연맹은 다른 스포츠
많이 지원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수영 회장님은 메달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죠. 회장님은 자신의 성과를 조직에 귀감이 되고 있었기에 그분이 조직을 오래
획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쇼트트랙에 투자한 남다른 만들어내기 위해 선수들을 압박하는 분이 아니었어요. 이끌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안목을 지닌 분이었어요. 처음 쇼트트랙이 도입되어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더
종목을 전향한 것이 저에게는 메달을 딸 수 있는 초석이 노력하셨죠. 다른 선수나 지도자들도 그러한 마음을
되었죠.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의 김기훈은 없었을 수도 느꼈기에 최고의 기량을 내기 위해 더욱 매진했고요.
있을 거예요. 회장님이 좋은 기회를 주신 덕분이라고 개인적으로 그런 회장님이 상당히 존경스러웠습니다.
생각합니다. 한 사람에게만 주목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똑같이
보듬어주셨죠. 저 또한 회장님의 모습에서 많이 배웠어요.
이수영 회장은 굵직한 국제 경기부터 전지훈련까지 훗날 제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회장님처럼
선수들과 동행했는데요, 이와 관련해 특별히 기억에 남는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죠.
일이 있나요?
1989년에 영국 솔리헐(Solihull)에서 세계 선수권 금전적으로도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지원한 것으로 알고
대회가 있었어요. 한국에서 쇼트트랙이 시작된 지 있습니다.
3~4년째라 조금씩 성과가 나기 시작할 때였죠. 그 대회의 선수들에게 격려금을 주는 건 기본적으로 하셨어요. 저
1,500m 경기에 나가 은메달을 따면서 개인 성적을 같은 경우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퇴할 때 조흥은행(현
내고 있었는데, 500m 시합 도중 북한 선수의 실수로 신한은행)에 추천해주셔서 조흥은행 소속 선수로 뛸 수
발목을 크게 다쳤습니다. 현장에서 네 바늘을 꿰매고 있게 길을 열어주셨죠. 회장님은 선수 생명이 길지 않기
김기훈은 우리나라의 첫 국가대표 쇼트트랙 시합을 포기하려고 할 때 회장님은 ‘좋은 성적을 내고 때문에 선수들이 은퇴하고 난 뒤의 삶에 대해서도 많이
선수이자 첫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있으니 부상을 이기고 이 시합에 꼭 나가야 해’라고 생각해주셨어요. 저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도 눈앞에
처음 빙상 스포츠에 발을 들인 10대부터
말씀하지 않으시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부상을 걱정하고 보이는 것만 챙겨주는 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이수영 회장을 만나 인연을 맺은 그는 자신의
다독여주셨어요. 저에게는 오히려 그게 힘이 되었죠. 제가 도움이 되도록 앞으로의 길을 같이 걱정해주셨죠. 달콤한
성과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선수들을 지원하는
이수영 회장의 모습에서 많은 가르침을 스스로 극복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게 힘을 주셨기 때문에 사탕은 먹고 나면 끝이잖아요. 회장님은 눈앞에 보이는
얻었다고 말한다. 치료를 받고 다음 날 열린 1,0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딸 달콤한 사탕을 건네기보다 선수들이 인생을 살아나가는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대한민국선수단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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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3. INNOV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