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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경인방송 iTV 개국 이수영 회장은 특유의 사명감을 갖고 매달렸다.
메이저리그 독점 중계권을 따내 입지가 높아지며
2000년에는 경기도 남부까지 방송 권역을 확대해 VHF
96 채널 4번을 획득하고, 같은 해 경인방송(iTV)으로 회사
이름을 바꾼다. 하지만 이수영 회장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극심해진 노사분규와 방송위원회가 방송 재허가 추천을
거부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2004년 12월
31일, 경인방송과 이수영 회장의 인연은 아쉽게도 막을
내리고 만다.
1996년 8월 동양화학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이수영
회장은 본격적인 2세 경영 체제에 돌입한다. 이 시기
이수영 회장이 도전한 신규 사업은 인천 지역 민영
방송국을 설립하는 일이었다. 동양화학과 인천의 인연은
부친인 이회림 명예회장이 인천에 동양화학의 태동인
이수영 회장(왼쪽)이 롱프랑사에 한불화학을 매각하는 조인식 모습
소다회 공장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선대의 뜻을 이어
기업의 기반을 닦은 터전, 이곳을 의무와 책임을 다해
지키려는 이수영 회장의 행보 중 하나가 경인방송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지역 시민에게 문화적 혜택을 누리게
하고 싶었던 그의 꿈과 인천 민영 방송은 지역의 토착
기업인 동양화학이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주위의 권유도 선택과 집중의 시기 와이오밍 소다회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자주
작용했다. 미국을 드나들던 그는 미국 일류 회사에는
1996년 전주, 울산, 인천 세 개 도시의 2차 지역 ‘빚이 없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민영 방송 설립 계획이 발표된 후 여러 업체와 열띤 받는다. 당시 한국 회사는 대부분 손익계산서만 살펴봤지 재무 건전성은
경쟁을 벌인 끝에, 마침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당장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는 동양화학의 재무구조를 더욱
그해 10월 인천방송은 UHF 채널 21번으로 개국했다. 공고히 하면서 비핵심 사업이던 합작사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1996년
경기고등학교 시절 방송반 반장으로 활동하기도 한 반도체 관련 부품을 제조·판매하던 영신쿼츠와 헤라우스오리엔탈하이텍을
이수영 회장은 방송국 사업에 애착을 갖고 의욕적으로 합작사인 독일 헤라우스사에 매각하고, 1998년 반도체용 고순도 약품을
이끌었다. 공중파 방송국이 SD급 화질을 사용하던 때에 생산하는 동우반도체를 합작사인 일본 쓰미토모사에 매각한다. 또 같은
인천방송에는 HD급을 설치하는 등 초기 시설 투자를 해 6월 동양화학이 100% 소유하고 있던 이양화학의 지분 50%를 프랑스
아끼지 않았으며, 타 민영 방송과 달리 100% 자체 편성을 SNF사에 매각하고, 성장 가도를 달리던 농약 사업도 스위스 노바티스사에
하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이어간다. 매각한다. 비핵심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해 현금을 확보하고 핵심 사업인
비록 개국한 지 한 달 만에 맞은 IMF 사태와 서울 소다회에 주저 없이 투자한 이수영 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은 IMF로
지역 송신 진출이 막히면서 힘든 시기가 지속되었지만 1996년 11월 25일 자 <매일경제> 기사 구 경인방송(iTV) 사옥 전경 기업들이 위기를 맞을 때 동양화학이 기회를 잡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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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3. INNOV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