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0 - LEESOO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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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도 있었지만 오죽하면 기업 파업이라는 말이 나왔겠느냐는
동조론이 공존했을 만큼 선거철을 앞두고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기업이란 항상 투명하고
여러모로 복잡하고 어려운 시기였다. 약점이 없어야 합니다.
임금 인상보다 실업자를 취업자로 만들어주는 것이 그래야 노동계와 대화가 가능하며
100% 복지가 아니냐는 의견을 피력하던 이수영 회장은 사용자에게 힘이 생기죠.
경총을 통해 이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정부가 주도하는 ‘고용
창출 100대 우수 기업’ 선정을 이끌어내는 데 앞장섰다. 그는 기업이 약점이 많으면 ‘노’라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해외 기업과의 건강하고 적극적인 M&A의 얘기해야 할 순간에 그렇게 말할 수 없고,
필요성을 피력하기도 했으며, 기업의 역사적 소명은 일자리 용기를 내서 설득해야 할 때
창출에 있다는 사실을 늘 강조했다. 2007년 최초의 노사 공동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
기구인 노사발전재단을 출범시킨 이수영 회장은 2008년에는
경제5단체와 함께 대기업 신규 채용 10% 늘리기와 중소기업의
1사 1인 추가 채용 캠페인을 주도한다.
2009년 주위의 ‘강권’으로 세 번째 경총 회장직을 수락한
이수영 회장은 미국발 글로벌 경제 위기를 타계할 복안으로
노·사·민·정이 함께하는 고통 분담에 동참한다. 2009년 2월
24일 ‘경제 위기 극복’ 대타협 선언을 통해 내놓은 64개 실천
방안 합의안에서 노동자 측은 임금 동결과 일자리 나누기, 6년의 경총 2010년, 마침내 1996년부터
사용자 측은 해고 자제, 고용 유지라는 큰 틀에서 의견 통합을 마침표를 찍다 14~15년간 이어져온 노사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5단체 공동대책 발표
이룬다. 민노총이 불참한 가운데, 한국노총(이하 한노총)과 문제의 최대 이슈인 복수
손잡은 경총은 이수영 회장의 주도하에 1997년 IMF보다 힘든 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가 국가적 합의를 도출해낸 것을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힘쓴다. 계기로 이수영 회장은 경총 회장직에서 ‘해방’된다. 이수영
회장을 6년 동안 보필한 김영배 전 경총 상임부회장은
“일자리는 가계와 사회를 지탱하는 “경총 회장은 모두가 피하는 자리예요. 영광스럽거나
가장 기초적인 사회 안전망입니다.” 자랑스러운 자리가 아니죠. 재계를 대표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노동계에 일정 부분 쓴소리를 할 수밖에
그가 생각하는 현대의 유토피아에서 일자리의 유지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모두가 피하는 힘들고 어려운
창출은 무엇보다 선행해야 할 과제였다. 자리에서 6년 동안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이수영
회장은 재계의 대변인이자 노사 간 소통 창구로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노조와 소통하는 일에 앞장선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NAP)
2006년 1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덕분에 이수영 회장이 이끈 경총은 그 어느 때보다 화해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으로 공무원, 교사의 무드가 조성되었으며, 이수영 회장 특유의 합리적 사고와
정치 활동 범위 일정 부분 확대, 비정규직 고용 남용
균형 감각이 노사 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견인한 발전적
방지, 필수공익사업장의 범위 축소,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 등이 포함됐다. 시기였다.
2004년 7월 16일 자 <중앙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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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4. EXPLORING NEW HORIZ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