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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5일                   우리는 지금 한국의 산업계가 배출한 그리 흔치 않은 훌륭한 기업인,                                                                                       1954년 봄, 한국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폐허 같은 서울 광화문의
            김인호 전 한국무역협회장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던 이수영 회장이 이 땅에서의 생을 마치고                                                                                     한구석 낡은 판잣집 임시 가교사에서 까까머리 1학년생으로 중학교 생활을 같이
            추모사 원문
                                            저세상으로 떠나는 마지막 길을 전송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시작한 지 어언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장구한 시간 고인과 저는 공사 간에
                                                                                                                                                                        참으로 많은 인연을 쌓으며 지내왔습니다. 학교생활에서의 많은 에피소드와 그의
                                            지난 5월 선대 이회림 회장님 탄신 100주년 기념식에서 자리를 같이한 것이                                                                                  낭만적 면모를 이야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특히 고인이 본격적으로 동양화학의 경영 책임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저는
                                            이수영 회장의 너무나 홀연한 떠남에 귀를 의심한 사람이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정부에서 물가정책의 실무 책임을 맡고 있던 1980년대 중반이 기억납니다. 당시는
                                            이 시대로서는 너무나 짧은 생, 그러나 굵고 깊고 의미 있는 생을 마친 이수영 회장을                                                                             정부가 사기업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고 강력한 가격 규제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보내는 이 엄숙한 영결식장에 깊은 슬픔을 안고 같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참석하신                                                                                우리 두 사람은 정부와 기업 간 관계에서 일견 상충과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는
                                            많은 지인을 대표해 저는 서 있습니다. 저희들의 마음이 이러할진대 평생을                                                                                    경제·산업·기업 현안을 놓고 토론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에게서 듣는 기업 경영자
                                            같이한 미망인을 비롯한 가족들, 필생의 사업의 동지들인 OCI 임직원의 마음이                                                                                 시각에서의 정부 정책과 제도상 문제점, 기업 경영의 바른 길, 그 길을 놓고도
                                            어떠하겠습니까? 신의 깊은 위로가 같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꼭 그대로만 걸을 수 없는 기업 경영의 현실, 한국에서의 기업 경영의 어려움과
                                                                                                                                                                        경영자가 안고 있는 깊은 고충 등은 책상머리에 앉아 스스로 한국 경제와 산업을
                                            고인은 화학과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거목이었습니다. 선대 회장께서 일으키신                                                                                    이끌고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던 저에게 시장과 기업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화학 산업의 쌀과 같은 소다회 생산을 이어받아 무기화학, 석유석탄화학, 제철화학,                                                                               하는 청량제 구실을 했습니다.
                                            정밀화학, 단열재 분야의 원료 생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화학 산업의 발전에                                                                                  오늘날 시장주의와 자유기업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저의 경제적 사고
                                            그의 손이 닿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두려워 감히 시작하지 못하는                                                                                체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고인에게 받은 영향이 매우 컸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태양광 시장에 도전해 단숨에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고 3년 만에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글로벌 ‘Top 3’기업으로 도약했습니다. 가히 글로벌 기업가 정신의                                                                                  이수영 회장!
                                            표본이라 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계에서 다섯 개 기업만 핵심 기술을 독점하고                                                                                지금까지 기업 경영 활동이라는 치열한 싸움을 모두 마치고 필생의 노력으로
                                            있던 폴리실리콘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어 국내 최초로 양산에 성공하는 쾌거를                                                                                   가꿔온 OCI의 글로벌 기업화를 이루고 사업 보국, 정도 경영, 기업가 정신의 신념을
                                            이뤄내 군산에 세계 최대 규모의 공장을 운영하고, 또한 미국에 북미 최대 규모의                                                                                지켰으니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저세상에서 편히 쉬세요. 다 마치지 못한 일이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했습니다.                                                                                                             있다면 훌륭한 자손과 아우들, 전문 경영인들이 잘 감당해갈 것입니다.
                                            고인은 생산된 제품의 70% 이상을 해외 수출하는 무역인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한국 무역의 발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다행히 훌륭하게 후계자로                                                                                  존경하는 기업인 이수영 회장!
                                            키운 맏아들 이우현 사장이 우리 무역협회의 최연소 비상근부회장으로 회장단에                                                                                   60여 년 세월을 같이한 좋은 친구 수영!
                                            참여해 무역 발전에 대한 이 회장의 철학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고인이                                                                                슬픔을 억누르며 마지막으로 불러봅니다.
                                            필생의 사업으로 추진해온 OCI가 확장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걸어온 길은 한국
                                            경제와 산업 그리고 무역 발전사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7년 10월 25일
                                            고인은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리는 선대 회장의 뒤를 이어 신용·검소·성실의                                                                                 나라 경제와 기업 발전을 같이 고민했던 친구
                                            덕목을 실천하는 기업인의 귀감이었습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면서도 편법을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인호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투명 경영, 정도 경영을 실천했습니다. 남들이 꺼리고
                                            싫어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6년간이나 맡아
                                            그 어려운 노사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15년간 빙상연맹 회장으로서
                                            재직하면서 관심 밖에 있던 우리나라 빙상을 세계 최강으로 만들어 한국 체육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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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5.  EMBRACING CHALLE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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