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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Episode 2
잊지 못할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클래식과 문학을 사랑하는 낭만적인 취향
중학교 시절, 학교가 일어나니 텐트 안이 텅텅 경기고의 추억을 함께한 친구들은 (Zorba the Greek)>, 제임스
끝나면 이수영 회장의 비어 있었다. 낮에 물가에서 모두 음악과 문학을 사랑했다는 미치너 <스페이스(Space)>
종로구 수송동 집엔 노느라 곯아떨어진 사이 돈과 공통점이 있다. 문예반장이던 등이다. 지금도 문우일 교수와
공부를 핑계 삼아 친구 옷은 물론 먹을거리까지 몽땅 정태기, 신문반장 한홍섭, 이수영 회장의 서가에 나란히
서너 명이 모여들었다. 도둑맞은 것이다. “지금처럼 밴드부에서 알토 색소폰을 불던 꽂혀 있는 이 책들은 모두 한글
“저, 이수영, 장재언 휴대폰이 있던 때도 아니고, 문우일은 이수영 회장과 취향을 번역본이 아닌 영문 원서다.
이렇게 셋이 참 친했어요. 저 큰 텐트를 접어서 들고 갈 나누는 동지였다. 공부가 버거울 때 “이수영 회장은 영어를 상당히
양반집 사랑방에 손님이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이거 이들은 함께 종로의 클래식 음악 유창하게 했어요. 외국인을
들끓듯 이 친구 집에는 큰일났다 하면서 종일 굶으며 감상실인 르네상스에 갔다. 영화도 만났을 때 전공이나 사업에 관한
언제나 사람들이 마음만 졸이고 있었어요. 좋아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고등학교 시절부터 독서와 음악 취향이 잘 이야기는 잘할 수 있더라도,
맞았던 친구 문우일이 캐나다에서 이수영
북적거렸죠. 어머님이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의 추억을 간직한 친구 이수명과 함께 해 질 녘엔가 이놈들이 잘 주연의 <녹원의 천사>, 로버트 회장에게 직접 보낸 책과 엽서 중간중간 농담이나 상식을
참 좋으셨어요. 인심이 노는지 보러 왔다면서 이 테일러와 비비안 리가 출연한 나누는 건 웬만해선 어려운
후하고 음식 솜씨도 굉장하셨죠.” 이수명 회장의 어린 친구 부모님이랑 누나가 닭을 삶아 온 거예요. 일단 <애수> 두 편의 영화는 이들에겐 평생 기억에 남는 일이거든요. 이수영 회장의 글로벌한 경영 방식에서
시절 기억 속 이수영 회장의 집은 수많은 이야기와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솔직하게 말씀드렸지요.” 아름다운 걸작이다. 오랜 시간 곁에 둔 이런 책들이 지식과 지혜의 범위를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이회림 명예회장은 호랑이처럼 불호령과 함께 당장 집으로 끌려갈 거라 예상했지만 서울대와 캐나다 매니토바 대학교의 명예교수인 자연스럽게 넓혀주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됐을
엄했지만 아들의 친구도 자식처럼 잘 보듬었다. 이회림 명예회장은 크게 웃으며 “이놈들아, 몸 성한 문우일은 정서적으로 가장 교류가 깊었던 친구다. 거라 생각합니다.”
이수명 회장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재미있는 일화도 게 다행이다” 하시면서 주변을 쓱 둘러보고는 그냥 이수영 회장의 이메일에는 지금도 그와 주고받은 고등학교 졸업 후 각자 대학에 진학한 둘은
들려준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뚝섬 유원지로 돌아가셨어요. “다음 날 아침 눈떠 보니 저희를 내용이 많이 남아 있는데,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만나는 횟수가 더 잦았다. 그들의 만남에서 화두는
피서를 갔어요. 그땐 뚝섬이 모래사장이었죠. 이수영 보호해줄 분을 보내셨더라고요. 덕분에 계획대로 둘은 서로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존재였다. 이 언제나 문학과 철학 그리고 음악이었다. “축하 카드
집엔 신기한 물건이 참 많았는데, 동그랗고 커다란 일주일 동안 행복한 여름방학을 보내고 돌아왔지요. 나이대 친구들은 관심도 없는 묵직한 주제의 책을 한 장을 써도 이 친구 건 달랐어요. 아주 좋은 글귀를
미군 장교용 텐트도 그중 하나였죠. 저와 이수영, 평생 두고두고 잊지 못할 거예요. 우리 셋이 모였다 좋아했던 둘은 서로 책을 추천하고, 책을 다 읽고 난 적어주기도 했는데, 문학적 소양이 깊었던 거죠. 음악
장재언 셋이 캠핑을 갔어요. 야전침대부터 캔에 든 하면 이 얘기로 웃곤 했지요.” 뒤엔 인상 깊었던 구절이나 각자 느낀 점을 공유하곤 취향도 잘 맞았어요. 사업가가 되지 않았다면 사회과학
먹을거리까지 전부 준비했죠. 친구 덕분에 난생처음 했다. 기억에 남는 책은 토머스 무어의 <유토피아 분야에서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캠핑이란 걸 해본 거예요.” 이틀 밤이 지났을까. 자고 (Utopia)>,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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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1. THE EARLY Y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