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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앞집 친구에서 그의 미국행에는 학업 외에 또 다른
평생의 인연으로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그보다 앞서 미국
유학을 떠난 사랑하는 이와 좀 더 가까이
있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다. 미국으로
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만큼 그리워한 이가 바로 평생의 연인이자
아내인 김경자 여사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54년, 중학교 1학년 때다. 한국전쟁 이후
부산으로 피란 갔던 이회림 명예회장은 가족을 이끌고 현재 OCI미술관이
자리한 수송동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작은 골목길을 사이에
둔 동갑내기 친구가 됐다. 김경자 여사는 남편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한다.
“일사후퇴 때 남쪽으로 피란을 내려갔다가 1953년 정전 이후 다시 서울로
돌아온 아이가 많았어요. 이 사람도 그때 서울로 돌아왔죠. 집 앞으로 누가
이사를 왔나 보다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땐가 그 집에 저랑
초등학교 동창인 우양교역 이수명 회장이 놀러 왔더라고요. 그래서 앞집에 사는
‘이수영’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죠.”
1950년대 후반, 학생들 사이에서는 미군에게 영어 회화를 배우는 것이
“오빠가 유학 중일 때 저는 이화여대에 다니고
유행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이수영 회장과 김경자 여사는 일주일에 한두
있었어요. 그때 저의 임무 중 하나는 집안
번씩 수업을 하는 영어 스터디 그룹 클래스에 속해 있었다. “한 번은 그 사람 집,
사정을 일기로 쓴 후 편지지에 옮겨 미국에 있는
한 번은 우리 집 이렇게 번갈아가며 공부했어요. 그때만 해도 남녀가 요즘처럼
오빠에게 보내주는 것이었죠. 전화도 힘들던
친하게 지내지 않을 때라, 그저 영어 공부를 같이 하는 친구 정도로 생각했죠.”
시절이라 유일한 소통 창구가 편지였거든요. 김경자 여사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던 날, 공항으로 배웅을 나온 이수영 회장
대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수영 회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대뜸
그러다 제가 결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는 말이 “‘파마’한 머리 좀 보자”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곧바로 펌을 했는데
미국에서 오빠가 보낸 소포가 도착했어요. 당시
어떻게 알았는지 머리를 보여달라며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대학교 1학년, 둘이
우리나라에는 있지도 않던 하얀색 쌤소나이트
처음 만나 지금의 동화면세점 자리에 있던 파리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그 옆
여행 가방에 재클린 케네디 스타일의 투피스와
시네마코리아 극장에서 <에이프릴 러브 April Love>를 봤다. 첫 데이트였다.
모자, 잠옷까지 준비해서 보냈더라고요. 지금도
그 뒤론 어디든 꼭 함께 다녔다. 기동차를 타고 뚝섬에 가 배를 타던 날,
그 가방을 갖고 있습니다.” 동생의 결혼식 날
김밥 도시락을 싸 들고 진흥왕비 꼭대기까지 올라가던 날, 서울에서 두 번째로
빠듯한 유학생 신혼부부 살림에도 센스 있는
높은 동명빌딩의 동명그릴에서 처음으로 굴튀김을 먹던 날 등 김경자 여사는
선물을 한가득 챙겨 보낸 오빠의 마음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물론 새언니인 김경자 여사의 50년 전의 데이트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사람 친구가 곧 내 친구들이다 보니
우리가 만날 땐 꼭 친구 여러 명이 같이 어울렸어요. 1962년 군대에 갔을 때도
도움이 컸다. “이 이야기가 저와 오빠의 ‘감동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저를 데리고 <벤허>를 보러 가달라고 당부했더라고요.
신(Scene)’이에요. 저희 가족 모두 오빠와 이런
그렇게 군대에 있으면서도 친구들에게 부탁해 새로 나온 영화며 좋다는 곳을
감동 신이 하나씩은 있답니다.”
구경시켜줬어요. 워낙 사람을 잘 챙기고 다정했죠. 조용하고 차분한 데다 아주
- 동생 이정자 여사 자상했어요. 저뿐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항상 그렇게 대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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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LEE SOO YOUNG 1942 – 2017SOO YOUNG 1942 – 2017 STORY 1. THE EARLY Y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