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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고 선후배로 알게 된 이후 평생을 가깝게 지낸 일을 6년이나 해내더라고요. 노총의 단식 농성에 제 평생 변치 않고 유지된 ‘이수영답다’라고 할 수 있는
INTERVIEW 막역한 사이인데요, 고등학교 시절의 청년 이수영은 어떤 발로 찾아간 사람도 이 회장이 유일하죠. 아무 탈 없이 모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분이었나요? 회장직을 마무리한 것도 대단한 일인데, 경총 회장직을 사리 분명한 태도죠. 송상(松商)들은 셈이 아주 분명해요.
박용성 처음 만난 건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입니다. 이수영이 내려놓으면서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일을 잘 마칠 주고받는 것이 확실하죠. 송상의 기질을 물려받아서인지
전 두산중공업 회장 한 학년 아래 방송반으로 들어와 같이 클럽 활동을 수 있었다”라며 인사를 하더라고요. 이수영이 그런 그이는 항상 셈이 분명하고, 검소하게 살아온
하며 친해졌죠. 쉽게 말해 마음씨 좋고 착한 부잣집 사람이에요. 기업인이었어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있어도
아들이었어요. 요즘에 금수저란 말 많이 쓰잖아요. 함부로 돈을 쓰는 법도 없고, 쓸 돈은 쓰고 안 쓸 돈은 안
수저로 치면 이 친구는 백금, 다이아몬드 수저인데 절대 한국 스포츠 산업의 발전을 위해 두 분 모두 힘쓴 쓰는, 지극히 ‘정상’적인 소비생활을 한 거죠. 최근까지도
그런 티를 안 냈어요. 정말 한 번도 그렇게 느낀 적이 바가 큰데요, 이와 관련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으리라 1년에 서너 번은 꼭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길 나눴어요.
없으니까요. 그 성품은 경영인이 되어서도 변함없었죠. 늘 생각합니다. 술자리를 같이할 때면 기분이 좋아 목소리가 조금
점잖고 겸손한 사람이었어요. 1981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한 후 정부가 추진한 체육계 높아지고 얼굴이 벌게지는 정도였지, 추태 한 번 부린
개편에서 저는 유도에, 이 친구는 빙상연맹에 관여하며 적이 없죠. 사실 너무 바른 생활만 고집한 터라 별다른
기업의 최고 경영자로서 바라본 경영인 이수영은 어떤 더욱 가깝게 지내게 됐지요. 이수영 회장이 빙상연맹을 얘깃거리가 없어요.
분이었나요? 맡을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스피드스케이팅은 범접하기
참 바른 사람이었죠. 이상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힘든 스포츠였어요. 피겨도 마찬가지였고요. 이수영
세상에서, 삶의 법칙이 분명하고 상식적인 행동만 하다 회장이 빙상연맹을 맡으면서 그나마 체격이 작은 우리
보니 더 눈에 띄었어요. 어디서 누굴 만나든 예의가 선수들이 쇼트트랙에선 유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깍듯하고 사리가 밝았죠. 정치 자금 지원을 공식적으로 사비를 들여 선수들을 훈련시킬 정도였으니, 이 사람
금하던 시절에 한 후배가 이수영 회장에게 후원금을 없었으면 한국이 오늘날 동계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날
부탁한 모양이에요. 단번에 거절했다고 하더라고요. 워낙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사리가 분명하고 맺고 끊는 게 정확한 사람이었어요. 이수영 회장이 한국 동계 스포츠에 세운 공은 말로 다 할
실력도 중요하지만 법률적·도덕적으로 문제없는 사람이 수 없어요. 이 사람 덕분에 걸출한 인물도 많이 나오고,
기업인이 돼야 한다고 늘 강조했죠. 지금처럼 메달도 획득할 수 있게 된 거니까요.
이수영 회장이 경총을 맡고 있던 시기에 대한상공회의소 막역한 친구이자, 경영인으로서 어렵거나 고민되는
회장을 지내셨죠. 한국 경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을 부분을 회장님과 상의하는 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나누는 동지이기도 했을 듯한데, 뜻이 잘 통했나요? 힘든 얘기를 절대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우린 항상 이심전심이었어요. 생각이 비슷하다 보니, 경영인들 일이야 신문만 보면 다 알게 되는데, 제가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은 이수영 회장과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굳이 말을 많이 나눌 필요도 없을 물으면 답을 하는 정도지 사방에 소문 내가며 해결하는
고등학교 선후배로 만나 60년 넘도록
만큼 뜻이 잘 통했습니다. 경총 회장은 힘든 자리예요. 스타일은 아니었죠. 그런 면에서 고집스러운 구석이
우정을 나눈 막역한 사이다. 경영인으로서
사실 제가 이수영 회장에게 경총 회장직을 제안했는데, 있었고요. 아마 저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어렵고 힘든
서로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한국
이 사람이라면 분명 다를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을걸요? 남들에게 조언을
스포츠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함께 힘을
보태며 평생 뜻이 잘 통했던, 마음이 잘 맞는 평소 나서는 성격이 아닌 이수영 회장이 대외적 활동을 구하기보단 혼자 고민해서 해결책을 찾는 편이었어요.
동지였다. 수락하는 일이 쉽진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이 힘든 굉장히 강건한 사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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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1. THE EARLY Y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