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8 - LEESOO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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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뉴욕의 작은 교회에서                                                                                                누군가 어떻게 결혼하게 됐느냐고 물으면 이수영 회장은                   급작스럽게 프러포즈를 받은 후 학업과 일, 결혼 준비를
                             열린 결혼식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냈다는 김경자
                                                                                                                                        매번 “내가 저 사람을 키웠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여사.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9월 새 학기가 시작되기
                                                                                                                                        평생 공부밖에 모르던 김경자 여사를 곁에서 살뜰하게
              66                                                                                                                        챙기고, 또 결혼을 결심하게 하는 일 모두 그의 몫이었다.                전에 빨리 결혼식을 치러야 하는 거예요. 학교에 가야
                                                                                                                                        1963년 미국으로 먼저 유학을 떠난 김경자 여사가
                                                                                                                                                                                        한다는 조급함에 가족들에게 서둘러 결혼 소식을
                                                                                                                                        대학원에 진학할 무렵, 이수영 회장도 미국으로 유학을
                                                                                                                                                                                        알리고 일사천리로 준비했죠.” 의류나 관련 부자재 등을
                                                                                                                                        갔다. 그는 뉴욕에서, 그녀는 아이오와에서 학교를 다니고                 판매하던 뉴욕 32번가에 가서 드레스와 면사포를 사고,
                                                                                                                                        있어서 거리가 꽤 멀었지만 두 사람은 부지런히 오가며                   케이크와 꽃도 맞췄다. 1966년 8월 31일, 두 사람은 뉴욕
                                                                                                                                        애정을 키웠다. “1966년 봄방학 때 차를 빌려 뉴욕에서                65번가에 위치한 홀리 트리니티 루서런 교회(Holy Trinity
                                                                                                                                        아이오와까지 온 적이 있어요. 1,600km가 넘는 거리를                Lutheran Church)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에도
                                                                                                                                        꼬박 스무 시간 넘게 운전해서 온 거죠. 오랜만에 만나                  뉴욕에 올 때면 이 교회에 들르곤 했는데, 두 사람에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또다시 그 길을 가려니                   가족 탄생의 역사가 담긴 의미 있는 장소인 만큼 자녀와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어도 아주 끔찍했을 거예요.                    손주들에게도 기회가 될 때마다 꼭 보여주는 곳이다. 함께
                                                                                                                                        한데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내어 달리다 교통경찰이                      공부하는 동지가 생기니 미국 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더욱
                                                                                                                                        따라온 거예요. 갖고 있던 돈 대부분을 벌금으로 내고                   높아졌다. 서툴고 어설프게나마 신혼살림을 꾸려나가다
                                                                                                                                        20달러인가 휘발유값만 남았더래요. 그 긴 시간을                     1968년 2월 첫아들 이우현을 낳았다.
                                                                                                                                        이동해야 하는데 밥도 못 먹고 돌아갔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해 급작스럽게 이회림 명예회장의 부름을 받은
                                                                                                                                            서울에서 생활비를 보내줄 수 없다 보니 김경자                   이수영 회장은 새로운 가족과 함께 서울로 돌아온다.
                                                                                                                                        여사 역시 일을 해야 했다. “대학 졸업 후 3개월 동안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의 병원에서 영양사로 일하게 됐죠.
                                                                                                                                        뉴욕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라 그땐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었어요. 새벽에 우유를 배달하기 위해 정거장마다
                                                                                                                                        서는 밀크 트레인이라는 게 있었는데, 이걸 타고
                                                                                                                                        코네티컷과 뉴욕을 오가며 데이트를 했지요. 매번 이 밀크
                                                                                                                                        트레인을 타고 저를 바래다주고 돌아갔어요.” 유학 생활과
                                                                                                                                        장거리 데이트를 병행하기가 어려웠던지 어느 날 이수영
                                                                                                                                        회장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프러포즈를 했다.
                                                                                                                                            “오빠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되고 싶어 했어요.
                                                                                                                                        멋있는 로맨티스트를 꿈꿨죠. 물론 저는 오빠가 그보다
                                                                                                                                        훨씬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인물은 물론
                                                                                                                                        스타일도 좋아서 인기도 많았죠.” 동생 이정자 여사는
                                                                                                                                        이수영 회장과 김경자 여사와의 연애 스토리는 그의
                                                                                                                                        낭만적이고 감상적 면모를 보여주는 더할 나위 없는
                                            1966년 8월 31일 뉴욕 65번가 홀리 트리니티 루서런 교회에서 소박하게 올린
                                            결혼식 사진. 주례를 담당한 닥터 러시 목사와 함께                                                                증거라고 말한다.                                                  이수영 회장과 김경자 여사의 결혼식 청첩장과 웨딩 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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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2.  THE FAMILY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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