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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회장의 빈자리 가족과 친구들은 이수영 회장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의 타계가 더욱 안타까운
건 그의 삶이 온전히 ‘남’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일은 물론
집안의 모든 대소사도 꼼꼼하게 챙기던 이수영 회장의 아이패드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과 관련 없는, 해외에 거주하는
친구분이나 친척들에게 보내신 메일도 굉장히 많더라고요. 두세
줄의 간단한 메시지이더라도 늘 주변 사람들의 안부를 챙기셨죠.
너무 ‘어른’으로만 살다 가신 것 같아요. 호기심이 많은 분이라 분명
손주들의 재롱에 환하게 웃는 이수영 회장
하고 싶은 일도 많았을 텐데, 그걸 꾹꾹 눌러 참고 사신 것 같아
안쓰러워요.” 딸 이지현이 확인한 아버지의 이메일함엔 ‘따뜻한
마음’이 오롯이 묻어나는 말들이 가득했다. 늘 할 일이 많았고,
주위를 챙기느라 애썼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도 크다.
이수영 회장은 이상을 좇으면서도 스스로를 엄격하게
절제하며 살았다. 자신의 편의나 이익을 위한 타협이란 있을 수
없는 인생이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바르게 살려고 했던 그의
성품을 두고 개성 출신의 철두철미한 도덕적 잣대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가 많다. 언제 어디에서도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 성향. 피 속에 각인된 송상의 기질과 집안 분위기, 거기에
맏아들이기도 한 그의 인생은 자신의 몫을 다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언행의 일치를 위한 그의 행동과 말에는 과함이
없었다. 그래서 공식 자리에서도 늘 조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경영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그나마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들을 때였다. 얼마 전 꿈에서
슈만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오빠를 봤다는 이정자 여사는 그가
피아니스트로 환생했으면 좋겠다며 말을 잇는다. “오빠의 첫 번째
캐릭터가 기계에 관심이 많은 공학도였다면, 두 번째는 전문가
수준의 음악 마니아였어요. 스스로가 고전적 낭만주의자였고 본인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죠. 좋아하는 음악도 맘껏 들을 시간이
없었던 오빠가 다음 생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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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2. THE FAMILY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