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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으로 증명한 아이들을 보살펴온 사람은 이 지역 신부님이었다. 그분을
거짓 없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통해 2억 원을 기부하며 지역 환경 개선과 교육 환경이
나아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의
재활의학과 강성웅 교수의 ‘호흡 재활’ 치료를 응원하고자
“올바른 생각만 하는 모범적인 친구였어요. 어린 이 병원 본원에 여러 차례 수억 원의 기부금을 전달하기도
나이인데도 스스로가 원하는 ‘이상적인 삶’에 대해 했다. 이수영 회장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제때 병을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기부를 통해 사회적 치료하지 못하는 이들이나 재정이 탄탄하지 못해 도움이
책임과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필요한 이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못하는 여러 사회
말했죠.” 오랜 친구이자 서울대와 캐나다 매니토바 복지 재단에 꾸준히 기부했다.
대학교의 명예교수 문우일의 말이다. 이수영 회장은 국내외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며
함부로 돈을 쓰지 않는 이수영 회장이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았다.
나눔에선 달랐다. 늘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칭찬받을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을 위한 무료 진료소인
일조차 주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기에 이수영 회장의 라파엘클리닉은 2009년부터 최근까지 김경자 여사를
개인 기부 활동에 대해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철저하게 통해 다방면으로 도움을 이어간 곳이다. 늘 겉으로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다. 그나마 기부 드러내지 않고, 따뜻한 마음과 정성이 필요한 곳에 닿을
금액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아내인 김경자 여사와 수 있길 바랐던 이수영 회장. 그가 꿈꾼 아름다운 세상은
이사장이나 비서에게 당부 차원에서 기부 사실을 대략만 가진 자의 실천하는 나눔이 당연한 덕목인 사회였다.
전달하는 정도였다. 언제나 빠르게 적재적소에 큰 도움을
주는 이수영 회장의 기부 방식은 그의 남다른 ‘센스’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서 12일 만에 구조된 유지환 씨는 당시 동양화학의
계열사인 삼광유리의 직원이었다. 계열사 직원이 백화점
매장에 지원을 나갔다 실종됐으니 회사에서도 걱정이 “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직원의
이수영 회장님은 평소에도 기부를 참 많이 하셨지만 항상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소식을 듣자 이수영 회장은 곧바로 유지환 씨를 구조한
당부하셨습니다. 2010년에 북한의 백령도 포격 사건이 있을 때였어요. 회사에서
119 구조대를 찾았다. 혼신을 다해 애쓴 구조 대원들에게 회의하다가 이 소식을 접한 회장님은 곧바로 백령도 주민들에게 2억 원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이곳에 직접 1억 원의 기부금을 보내셨지요. 기부금을 전달하기 위해 인천시로 갔을 때는 방송에 성금 모금 고지가
전달했다. 급작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그리도 꼭 필요한 나가지도 않을 때라 우리가 제일 먼저 찾아간 셈이었죠. 절대 언론에 한 글자도
곳에 기부금을 전달했는지, 당시 주변 사람들 모두 이수영 나가게 하지 말라고 하셔서 비공개로 기부했습니다. 또 인천대학교가 처음 설립했을
회장의 센스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때도 어려운 학생들이 해외 연수를 경험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학교에 장학금 5억 원을
내주셨어요. 그때도 절대 기부자가 누구인지 알리지 말라고 하셨죠. 아주 강경하게
교육 혜택이 적은 지역의 아이들과 상황이 여의치
말씀하셔서 뜻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않아 병을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걱정은
특히 많았다. 강원도 태백 발한동의 탄광촌은 폐광 이후 ”
- OCI 홍보팀 오창우 상무
부모들이 도시로 떠나고 조부모 손에서 자라는 조손
가정이 적지 않았다. 방과 후 그 흔한 학원조차 없는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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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5. EMBRACING CHALLEN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