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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과 이수영 회장 가족들이 꽤 오래 알고 ‘이 돈을 어떻게 써달라’거나 이후에도 ‘어디에 2009년 기부를 계기로 이수영 회장의 라파엘클리닉
INTERVIEW 지내셨다고요. 두 분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사용했냐’ 같은 물음조차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어요. 기부는 최근까지 지속됐다고요?
하루는 늦은 시간에 저의 스승인 이정상 교수님에게 어떤 계기로 라파엘클리닉에 도움을 주신 건지도 첫 기부 이후로는 사모님 성함으로 꾸준히 기부를 해주고
안규리 연락을 받았어요. 절친한 친구분의 아버님이 갑자기 말씀하지 않았고요. 제 생각엔 이정상 선생님이 계세요. 심지어 바자회를 할 때도 사모님이 방문해 일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장내과 교수 편찮으시니 왕진을 가줄 수 있느냐고요. 그때 처음 그 라파엘클리닉의 어려움을 귀띔해주셨거나, 그게 아니면 도와주시고 주변 분들을 통해 물품 기부처도 찾아주셔서
라파엘인터내셔널 이사장
댁에 가게 된 거죠. 사실 저는 누구를 잘 알고 지내는 여러 나라에 사업체를 운영하며 타국에서 고생하는 정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저에게 사모님 건강을
사람이 못 돼요. 이 첫 왕진을 계기로 몇 번 링거를 외국인 노동자를 안타깝게 여기신 것 같아요. 그냥 부탁하신 게, 진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모님을 통해
놔드리러 이회림 명예회장 댁에 방문했을 뿐 이수영 그렇게 추측만 하는 거죠. 이회장님 전화를 받은 다음 라파엘클리닉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주신
회장과는 환자 가족과 의사, 딱 그 정도의 관계였죠. 날 그분의 비서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계좌번호를 거였죠. 저 몰래 직원들 식사비도 여러 번 챙겨주셨는데,
이때만 해도 제대로 인사를 나눈 기억도 없었고요. 물으시더라고요. 당시에 직원들 월급은 당연히 밀려 워낙 ‘알아주길’ 바라는 분들이 아니다 보니 저 역시 감사
있었고, 환자 약값이 없어 당장 돌아오는 주부터 치료가 인사를 드리고 싶어도 꾹 참고 모르는 척하고 넘길 때가
그럼 거의 ‘모르는 사이’였던 거네요. 이수영 회장이 어려운 상황이었죠. 이 일을 어떻게 알고 계신 건가 많아요. 항상 감사하죠.
라파엘클리닉에 처음 기부할 당시, 라파엘클리닉은 싶어 비서분에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라고요? 여쭤보니, “회장님은 해마다 연말이면 갑작스럽게 한두 이런 개인 기부 활동이 라파엘클리닉 운영에 어떤 도움을
1997년에 라파엘클리닉을 설립했어요. 동성고등학교 곳씩 기부를 하세요”라며 “회장님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나요?
강당을 빌려서, 말 그대로 길바닥에서 진료를 했죠. 생각해주세요. 대신 기부 사실은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 라파엘클리닉은 국내 이주 노동자가 가장 많이 찾는
2006년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하고 당부했죠. 정말 아껴서 알차게 썼어요. 이회장님 무료 진료소예요. 의료인과 봉사자들의 역할도 크지만,
사람들을 발굴해 포상하는 제18회 아산상 대상을 받은 덕분에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죠. 이수영 회장님 같은 분들이 마음 써주시는 덕분에
후 그 상금으로 2~3년을 버텼는데, 그조차도 바닥이 나 단체가 유지될 수 있는 거죠. 이수영 회장님처럼 큰
더 이상 라파엘클리닉을 지속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이 일을 계기로 이수영 회장 내외와 여러 번 금액을 기부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실제로 잘
맞닥뜨리게 됐죠. 일요일마다 진료를 받기 위해 몰려드는 만나셨다고요? 일어나지 않는 기적과도 같고요.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은
외국인 노동자가 350명 이상인데, 정말 약 살 돈조차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 고맙다고, 덕분에 무사히 건강보험이 없어요.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일을 하더라도
없었으니까요. 날짜도 정확히 기억나요. 2009년 12월 무료 진료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감사 카드를 보냈죠. 고용주와 건강보험료를 반반씩 부담해야 하는데, 대부분
30일 저녁 7시쯤에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요. 그 뒤로도 한참 소식이 없다가 봄이 돼서야 같이 한국에 오기 위해 본국에서 빚을 지다 보니 보험료를
“저 이수영인데요” 하고 인사를 하셨어요. 익숙하지 않은 밥이나 먹자고 연락을 하셨어요. 사모님도 함께 아껴 빚을 갚는 데 쓰거든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이름이라 “아, 그러세요” 정도로만 짧게 대답하자 OCI의 나오셨는데, 사모님께서 저희 고등학교 선배인 거예요. 돌아갈 수 있도록 의료 적정선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이수영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어렴풋하게 이정상 경기여고에서 유명했죠. 참 소박하면서도 품위가 있는, 정말 힘든 일이에요. 이렇게 큰 도움을 받고 나면 ‘더
선생님 친구분이시구나 생각이 났죠. 그러더니 대뜸 미인으로 소문났던 분이세요. 저는 너무 감사한 마음에 잘해야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적정 진료가 돌아가도록
“그쪽으로 1억을 보낼 테니 좋은 곳에 써주세요” 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특유의 퉁명스러움이랄까. 별 노력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두 분은
국내 이주 노동자를 위한 무료 진료소인
전화를 끊으셨어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이런 기적이 말씀이 없으시더라고요. 기부나 사회 환원에 대해서는 라파엘클리닉이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라파엘클리닉의 안규리 이사장은 가장
일어날 수 있나’ 싶어 한참이나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일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누군가를 도우려면 실어준 분들이에요.
어려웠던 순간, 기적처럼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 정도만 얘기하셨죠. 참
이수영 회장에게 오래도록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며, 그와의 인연은 마치 기적과 같다고 정말 어떤 연고나 예고도 없이 큰 금액을 내어주신 원칙적이고 뭐든 티를 안 내는 담백한 분들이구나
얘기한다. 거네요. 어떻게 라파엘클리닉에 관심을 갖게 된 걸까요?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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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 YOUNG 1942 – 2017 STORY 5. EMBRACING CHALLENGES